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견은 혐오 표현이라도 다 괜찮나
류, 본인 발언 정당성 과시
극우 세력에 면죄부 준 셈
피해자들 ‘2차 가해’ 우려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이라는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의 발언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을 두고 ‘법원의 이번 판단이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류 전 교수는 31일 위안부 피해자 정기 수요시위 앞 맞불집회를 찾아 “한몫했다는 보람이 있다”고 했다. 류 전 교수는 2019년 9월 발전사회학 과목에서 “지금 매춘 사업이 있지 않냐. (위안부는) 그거랑 비슷한 거다”면서 “직접적인 가해자가 일본이 아니라니까”라고 말한 혐의(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로 기소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재판장 정금영)은 지난 24일 1심 판결에서 류 전 교수 발언이 부적절하다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역사적 사실은 “분명한 윤곽과 형태를 지닌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고 “재구성되는 사실”이라서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구체적이고 증명 가능한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이 있어야 하는데, 역사적 사실은 고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요시위 때마다 엄청난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들의 발언이 한국 사회에서 허용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판결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판결이 4건 있었는데 모두 피해 사실이 인정됐고 한국 법원에서도 마찬가지”라며 “법원이 이미 법적 판단을 내린 ‘법적 사실’을 고정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라 무죄 판결을 한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
이번 판결로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당장 오늘 류 전 교수가 집회를 열고 ‘사법부가 내 주장을 정당하다고 인정했다’고 말했다”면서 “수요시위 현장에서 나오는 혐오 목소리가 커졌다”고 했다. 류 전 교수는 이날 수요시위 앞 맞불집회 연단에 올라 “저 맞은편의 초라한 수요시위를 보면서, 이 과정에서 한몫했다는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류 전 교수가 역사학자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재판부는 류 전 교수의 발언이 “시대상을 정의하는 것과 같이 연구자 개인의 종합적 해석이나 평가, 학문적 주장”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대해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류 전 교수는 강의실 내에서 학문적 연구 결과를 강의한 게 아니다”라면서 “류 전 교수가 사회학 중에서 젠더사회학을 연구해서 관련된 내용을 연구한 것도 아닌데, 느닷없이 위안부가 매춘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강의 내용과 관계없이 자기 편견을 얘기한 것을 학문에 대한 표현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사무총장은 “한국과 일본의 정치사회 지형이 굉장히 극우화되고 있다”면서 “사법부와 정치권이 이런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했다.
이홍근·오동욱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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