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전통주로 창업 성공한 김성희씨 "먼저 다가서고 궂은일 앞장… 가장 큰 도움은 이웃" [창간35-'먼저 온 통일' 탈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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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어머니가 제사를 위해 담그던 술이 사업 밑천이 됐다.
힘들었던 일이 많지만 김씨는 그중 가장 지독한 것은 편견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맞섰고 먼저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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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 훌쩍 지난 지금 김씨는 북한 술 양조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남쪽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정착 지원금의 80% 이상을 브로커에게 주고 나니 빈손이었다. 식당 보조로 시작했고 10년 가까이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녔다.
어느 날 딸이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죽은 뒤 8개월 만에 모질게 탈북한 것은 “딸만큼은 잘 키우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당시 김씨가 버는 돈으로는 딸을 충분히 뒷바라지하기 어려웠다. 창업을 결심한 이유다.
공식적인 술 판매가 금지된 북한에서 사람들은 집집마다 특색 있는 술을 담근다. 김씨 어머니가 제사를 위해 담그던 술이 사업 밑천이 됐다. 처음엔 회사를 다니면서 방에 항아리를 놓고 연습했다. 2019년 퇴직금과 남북하나재단 영농정착지원금으로 창업했지만 곧 코로나19가 번지면서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아르바이트를 무려 5개나 뛰며 버텼다.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고 김씨의 술은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난해 성공적인 탈북민 정착 사례로 국회의장상도 받았다. 최근에는 야심 찬 신상품을 출시했다.
힘들었던 일이 많지만 김씨는 그중 가장 지독한 것은 편견이라고 말한다. 웃는 낯으로 건넨 술을 면전에서 뱉고 공산주의자라며 손가락질했다. 김씨는 맞섰고 먼저 다가섰다. 잠을 줄여 가며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하고 일손이 부족한 동네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남쪽에서의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총구를 뒤로하고 딸을 업은 채 두만강을 건너던 순간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가장 큰 도움이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탈북 후 처음 살던 강원 강릉에서 만난 적십자 봉사자 ‘언니들’의 배려와 기꺼이 이웃으로 그를 받아들여 준 음성의 동네 어르신들이 없었으면 오늘도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글=홍주형 기자, 사진=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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