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엄마 전향미씨 "언어·말투로 위축됐지만 이젠 대학원 공부 매진" [창간35-'먼저 온 통일' 탈북민]

김예진 2024. 1. 31.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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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4078명.

지난해 12월까지 입국한 탈북민 숫자다.

탈북민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0.06%에 불과하지만 '먼저 온 통일'이자 '새로운 이산가족'으로서 분단 체제의 숙제를 몸소 보여 주는 존재로 의미가 크다.

 "자녀가 뒤늦게 엄마가 탈북민인 걸 알고 '거지 같은 데서 온 엄마가 싫다'고 했대요."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북에서 온 걸 창피해하지 말자는 격려를 다른 탈북민들에게 전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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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정착은 편견 속에서 자존감 되찾는 분투의 과정”
3만4078명. 지난해 12월까지 입국한 탈북민 숫자다. 탈북민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0.06%에 불과하지만 ‘먼저 온 통일’이자 ‘새로운 이산가족’으로서 분단 체제의 숙제를 몸소 보여 주는 존재로 의미가 크다. 탈북민 하면 떠오르는 틀에 박힌 이미지나 부정적 인상에서 벗어나 3만여개 능력과 꿈, 생각을 가진 다양한 탈북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통합의 첫걸음이다. 세계일보가 4인4색 탈북민을 만나 정착기를 들어봤다.
“엄마 고향은 함경북도 무산이야.”

남한 생활 15년 차인 탈북민 전향미(35·사진)씨는 열 살 딸, 여덟 살 아들에게 고향을 숨기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택시를 타면 남편은 “제 아내 말투 이상하죠? 북에서 왔습니다”라고 먼저 말을 꺼내는 오지랖을 부린다.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학원 공부까지 하는 아내가 자랑스러워서다.

지난 2일 서울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만난 전씨는 탈북민의 남한 정착은 편견 속에서 자존감을 되찾는 분투의 과정이라고 풀어놨다.

“초기엔 온 게 후회될 정도로 언어 때문에 힘들어요. 말이 다를 뿐인데 무식하다고 할까 봐 두렵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라’는 말을 못 알아들었는데 무시당할까 봐 말을 못했어요. 어딜 가나 말을 하는 순간 북한 말투 탓에 사람들 눈빛이 변하는데, 그걸 자꾸 경험하면 위축되고 자존심에 상처가 돼요. 내가 당 비서한테도 고개 빳빳이 들었는데 왜 여기 사람들은 날 무시하나 싶기도 했고요.”

탈북민 중엔 고향을 숨기는 이가 적잖다. 전씨 주변에도 조선족 출신이라고 하거나 자녀에게 탈북민임을 숨긴 경우도 있다. “자녀가 뒤늦게 엄마가 탈북민인 걸 알고 ‘거지 같은 데서 온 엄마가 싫다’고 했대요.”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북에서 온 걸 창피해하지 말자는 격려를 다른 탈북민들에게 전하고 싶어서다.

“저도 처음엔 남편에게 북에서 왔단 말을 뭐하러 먼저 하느냐고 말렸는데 오히려 남편이 왜 숨기냐며 ‘난 네가 멋지다’,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해 줬고 지속적으로 옆에서 자신감을 줬어요. 누구에게나 곁에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는 25세에 입국 후 회사를 다니다 27세에 결혼해 육아에 전념했다. 31세에 대학생이 됐고 38세에 북한학 연구 특수대학원에 진학했다. “20대 땐 북한을 잊고 싶었어요. 지금은 강원도만 가도 ‘여기서 죽 가면 고향인데’ 싶어 눈물이 나요. 실향민 어르신들 심정을 이해하죠. 애도 낳고 나이가 드니까 고향 친구들이 제일 보고 싶거든요. 꿈은 통일이 돼서 고향에 가는 겁니다.”

글=김예진 기자, 사진=남제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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