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현장 지휘하는 허수현씨 "北 전공 살려 주경야독으로 악착같이 자격증 따" [창간35-'먼저 온 통일' 탈북민]

구현모 2024. 1. 3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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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4078명.

지난해 12월까지 입국한 탈북민 숫자다.

허씨는 "이탈주민들은 대부분 남한에 오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허씨는 "이탈주민들도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고 진로를 개척할 뿐만 아니라 남북 협력과 같은 우리 사회와 민족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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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정착은 편견 속에서 자존감 되찾는 분투의 과정”
3만4078명. 지난해 12월까지 입국한 탈북민 숫자다. 탈북민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0.06%에 불과하지만 ‘먼저 온 통일’이자 ‘새로운 이산가족’으로서 분단 체제의 숙제를 몸소 보여 주는 존재로 의미가 크다. 탈북민 하면 떠오르는 틀에 박힌 이미지나 부정적 인상에서 벗어나 3만여개 능력과 꿈, 생각을 가진 다양한 탈북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통합의 첫걸음이다. 세계일보가 4인4색 탈북민을 만나 정착기를 들어봤다.
“북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2015년 마흔 살이 넘은 나이로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 허수현(50·사진)씨가 초창기 가장 듣기 힘들었던 질문이다. 북한의 명문 김책공대를 졸업한 수재였지만 집안 형편 탓에 탄광과 공사 현장을 전전했던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현재 경남 창원의 해저터널 공사장과 화훼단지 부지 조성 공사장의 시공 품질을 관리하는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전에는 경기 평택 도시철도공사, 신안산선 지하철 신설 공사장의 팀장을 지냈다. 인천 지하철 7호선 청라지구 연장 공사에도 참여했다.

허씨는 “이탈주민들은 대부분 남한에 오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화장품 회사에 다녔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김책공대에서 배운 전공인 ‘측량’과 ‘계측’을 떠올린 그는 2018년쯤 경북 포항에 있는 토목계측회사에 들어갔다.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무시나 차별도 당했다. 그는 주어진 조건이 아닌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전문성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포항 일터에서 150㎞ 떨어진 대구과학기술대 야간대학을 다녔습니다. 오후 5시에 일이 끝나면 대구로 넘어가 강의를 듣고 포항에 돌아오면 자정이 넘었죠. 지금 생각해 보니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대학교 3년 동안 측량기사, 토목기사 등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이 있으면 10년 차 경력을 인정해 준다. 덕분에 그는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커리어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스스로 더 발전하기 위해 현재 대학원에서 측지정보학 석사 과정을 다닌다. 같이 일하는 동료 정민호씨는 “한국에 오신 뒤에 대학교도 다니고 자격증도 따시면서 전문성을 키우려고 하시는 모습이 동료로서 귀감이 된다”고 귀띔했다.

그의 꿈은 언젠가 남북 경제협력이 이뤄지면 남북 통합 지도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허씨는 “이탈주민들도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고 진로를 개척할 뿐만 아니라 남북 협력과 같은 우리 사회와 민족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구현모 기자, 사진=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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