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겉도는 새터민… “아픔 보듬고 잠재력 끌어내야” [창간35-‘먼저 온 통일’ 탈북민]

김예진 2024. 1. 3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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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하나재단 정착 도우미 3인 지상방담
탈북민이 ‘먼저 온 통일’이라면 탈북민 입국 초기 정착을 돕는 이들은 ‘먼저 통일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통일은 일반 국민에겐 환상 또는 무관심이나 거부감으로 양극단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통일은 탈북민을 통해 이미 조금씩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자 언젠가 마주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 소속 3인이 지상방담을 벌였다. 김용(50) 재단 일자리지원부 팀장은 근무 경력 20년으로 탈북민 정착·자립·교육 등 탈북민 지원 관련 대부분의 분야를 경험한 ‘베테랑’이다.
 
경력 11년의 최향(52) 취업전문상담사는 탈북민의 취업과 창업 등 경제적 자립을 돕는 일을 해 왔다. 최경옥(57) 통일전담교육사는 10년째 탈북민 자녀들의 학교 적응과 학부모를 지원하고 있다.
―탈북민을 지원하고 대하면서 힘든 점은.

최경옥(옥): “가장 어려웠던 점은 그들이 스스로 탈북민임을 당당히 인정하고 이 사회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받을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탈북민임을 노출하기 싫어해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학생 파악도 잘 안 되고 설사 탈북민 자녀라는 것이 알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학부모도 많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못하고 친구들과 문제가 생기는 학생들을 보면 부모님이 지원을 거부하는 것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였다. 전화를 받지 않는 학부모들 때문에 담임교사를 통해 겨우 탈북민 가정과 연결됐는데, 가정 방문을 가서 만나 보니 아슬아슬하고 어려웠던 탈북 과정을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친숙해졌고, 학부모와 자녀의 학교생활도 많이 도울 수 있게 됐다. 학부모는 이제 절 만난 게 가정의 행운이라며 고마워한다.”

김용(김): “소통 문제가 가장 크다. 처음엔 탈북민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이후에는 탈북 과정에서 겪은 가족 해체, 신변 위협 등의 아픔을 공감하는 게 어려웠다. 지금도 이해와 공감이 부족한 부분이 많고 앞으로도 더 노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다.”

최향(향): “취업을 시켜도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북한에서 왔다는 편견으로 상처 받아 상사나 동료와 갈등을 겪는 경우들이 있다. 그들의 퇴사를 볼 때 너무 안타깝다. 회사에서 동료들과의 대인 관계, 상사와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업체 대표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옥: “학생 중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심리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학교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었다. 교사들 말도 듣지 않고 뭐가 화가 나는지 수업 중에도 갑자기 교실을 뛰쳐나가곤 했다. 담임교사가 그 친구가 유일하게 말을 듣는 사람이 저라면서 학생을 찾아 달라고 했다. 저와 상담하면서 취미도 발견하고 꿈도 찾아 주게 됐다. 나중엔 육상부 선수가 돼 온 학교가 응원해 주고 함께 기뻐해 줬다.”

김: “취업 알선을 요청하신 분 중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남자분이 계셨다. 항상 화가 나 있었고 알선한 직장에 입사만 하면 음주 문제, 동료와의 다툼으로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나오셨다. 우리 직원들마저 버거워 그분을 기피하기도 했다. 제가 3일 내내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드린 적이 있다. 남한 사회에 대한 불만이 대다수였지만 탈북 과정에서 부인과 자녀가 강제 송환되고 한국에 입국한 이후 가족의 생사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분의 아픔을 다 알 순 없었지만 계속 들어드렸더니 나중엔 그분이 이제 일을 좀 해 보겠다고 하셨다. 3개월 이상 다니겠다는 약속을 받고 취업을 알선했다. 그 후 약속대로 3개월을 채운 뒤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며 찾아와 정상적인 상담이 시작됐고 직업교육도 받게 됐다. 직장을 잡고 배우자도 만나고 새 가정도 꾸리게 됐고 이후 지역사회에서 봉사까지 하시는 분이 됐다. ‘선생님 저 이제 세금 내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며 찾아오셨을 때 감동이 이 일을 계속하는 원동력이다. ‘내가 이분들만큼 강인하게 아픔과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성찰을 해 보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고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향: “대학병원에 취직한 뒤 병원 동료들과의 인간관계 문제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둔다는 분이 있었다. 북에서 살다 병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소원을 풀어 준다고 간호대를 졸업하고 병원에 간 분이셨는데 어렵게 들어간 곳을 나오겠다는 거였다. 매주 그분을 만나 병원 생활을 계속하도록 격려하고 지지했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중환자실 간호사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먼저 온 통일을 경험하면서 통합에 무엇이 중요하겠다고 느꼈나.

옥: “탈북민에 대한 인식 개선이다. 말로는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하면서 3만여 탈북민들을 우리 사회가 다양한 분야에서 수용하지 못한다면 다가올 통일 시대에 북한 주민들을 통합하기는 더욱 어려울 거다. 통일의 선봉대인 탈북민을 과감하게 믿고 사회 각 분야에서 활용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편견보다 맡기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게 통일을 이루는 과정이다. 저희만 보더라도 북한에서 10년 이상의 교사 경력을 가졌지만 북한 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남한의 교육사회가 20명의 선생님에게 교사라는 직함도 주기 어려워 ‘교육사’라는 법에도 없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남북한 두 교육제도를 경험한 탈북 교사들이야말로 통일 후 남북한 통합 교육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3만 탈북민들도 통일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경험과 경력이 필요한데 탈북민이라는 편견 탓에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지 못하고 오직 일용직만 전전하게 된다면 ‘먼저 온 통일’이라는 말도 무색해질 것이다. 탈북민들도 탈북민끼리만 만나지 말고 일반 국민과 소통 기회를 자주 갖고 어울리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무조건 차별당할 거란 편견도 떨치고 용기를 가져야 한다.”

김: “우리 사회의 다른 취약계층은 계속 취약계층으로 머무는 비율이 높지만 탈북민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해 주면 정착 몇 년 내 대부분 취약계층에서 벗어난다. 우리 국민이 탈북민을 언론에서 접할 때는 일부 부정적인 면만 보고 거부감을 보이거나 과도하게 동정하며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탈북민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이들이 우리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준다면 통합은 자연스럽게 된다.”

향: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탈북민 지원정책의 목적과 방향, 탈북민 정의를 보다 미래 지향적으로 재설정하고 한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이들의 잠재적 역량을 발굴해야 한다. 먼저 온 통일 국민으로서 향후 남북한 간 민족 및 사회 통합을 위한 선도적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글=김예진 기자, 사진=이재문·남정탁·최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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