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대학 칸막이 허물어 융합 인재 키워야 AI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

정상범 수석논설위원 2024. 1. 3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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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희 한림대 총장(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폐쇄적 대학구조, 기업 요구 ‘최고 인재’ 육성에 걸림돌
국내외 대학과 연계, AI 기반 ‘K유니버시티’ 보급 계획
AI 교육·AI 반도체·바이오 등 미래성장동력 육성하고
대학 자율권 확대 및 규제 혁파로 구조 개혁 서둘러야
[서울경제]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반도체·배터리·바이오·전기차 등 첨단산업이 심각한 인재난을 겪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이 차세대 핵심 기술로 떠오르면서 주요국들은 인재 양성과 초격차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산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낡은 교육 시스템을 혁신하고 고급 두뇌 육성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지낸 최양희 한림대 총장은 “대학의 폐쇄적 구조와 기득권 체제가 사회와 기업에서 요구하는 최고의 인재를 키우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대학의 칸막이를 허물어 융합 인재를 육성해야 AI 시대의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총장은 이어 “AI 교육, AI 반도체, 바이오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대학 자율권을 대폭 확대하고 낡은 규제를 혁파하는 등 교육 시스템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의 대학들이 인재 육성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단과대·학과·전공·교수별로 다양한 칸막이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낡은 구조로는 새로운 전공 및 융합 분야의 출현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다. 기존의 틀을 뛰어넘어 전공과 학과에 구애받지 않도록 대학 구조의 전면적인 해체와 재조립이 필요하다.

-한림대의 경우 교육 혁신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데.

△한림대는 학과 간 칸막이를 없애고 백지상태에서 맞춤형 수업 구조를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문사회, 의료·바이오, AI 분야를 대표하는 도헌학술원·의료바이오융합연구원·AI융합연구원 등 3대 연구원에서 10~20개의 전공을 관장하고 있다. 교수와 학생들은 특정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선택할 수 있다. 대학이 사회 변화의 중심에 자리 잡아 지역사회의 허브 역할을 맡는 ‘유니버시티 4.0’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지낸 최양희 한림대 총장이 31일 서울경제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대학 칸막이를 허물어 융합 인재를 육성해야 인공지능(AI) 시대의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대학가에도 AI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한국형 AI 교육 모델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AI 교수는 과목 개설은 물론 교안 구성이나 수업 진행, 성적 평가까지 담당하게 된다. 향후 10년 안에 전체 교과목의 20%를 AI 교수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AI 기반의 교육 시스템이 정착되면 국내외 대학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K고등교육(K유니버시티)’을 세계시장에 보급할 계획이다. 한국이 강점을 갖춘 에듀테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의 맞춤형 교육 시스템을 개발하면 글로벌 미래 혁신 대학 솔루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바람직한 인재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I를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개인과 기관·국가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학사·석사·박사처럼 기존의 획일적인 단순한 시스템으로는 핵심 인재를 배출하기 어렵다. 소단위의 마이크로 전공처럼 다양한 학위 제도를 도입해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AI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엇보다 호기심을 키워야 한다. 자꾸 문제를 생각하고 자유롭게 질문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서로 협력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자세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AI 경쟁력 수준을 평가한다면.

△한국의 AI 경쟁력은 기술력으로 따지면 세계 3위 수준이다. 미국과 중국은 압도적인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AI 반도체를 앞세워 민간 위주의 다양한 AI 생태계를 갖춘 것은 우리의 강점이다. 다만 고급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AI 학과나 AI 연구원은 고급 인재를 키워낼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도 부족한 형편이다. 우리는 AI 연구에 뛰어든 지 10~15년에 불과해 선도국과의 격차를 좁히려면 민관이 원팀으로 뭉쳐 총력전을 펴야 한다.

-우리가 과학기술 선도국을 이길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미국과 중국이 소홀히 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AI 교육이나 AI 반도체는 대표적인 공략 대상이다. 에듀테크 분야에서는 한국이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AI 반도체의 경우 설계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신생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방문한 것도 AI 반도체를 적정한 가격에 공급해줄 수 있는 나라가 한국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이런 글로벌 파트너와 손잡는다면 AI 반도체 설계·제조 분야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AI 인재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AI 전공 학과를 많이 만들기보다 유연한 사고력을 갖춘 인재 풀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능 점수만으로 학생과 대학을 줄 세우는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대학 정원이나 커리큘럼, 학위 제도를 자율화하고 학교 간의 경쟁 시스템을 촉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학생의 자질과 잠재력·적성을 다양하게 평가하는 유연한 선발 시스템이 허용돼야 한다.

-교육 개혁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은데.

△현실과 동떨어진 채 대학을 옥죄는 촘촘한 규정이 굉장히 많다. 현행 교육 관련 법은 교수와 직원을 둔다는 내용만 담고 있어 연구 전담 인력을 확보하는 데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학이 연구자를 확보하면 연구소 설립이 가능해지고 지역 기업들과 소통하는 허브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과의 협업도 활발해질 것이다. 대학의 영리 활동을 금지하는 것도 문제다. 지금은 학교에 호텔을 지어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방문객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면 혁신 모빌리티 모델인 ‘타다’처럼 불법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이제 한국에서는 국제 및 외국인 학교 설립이 불가능해졌다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우리도 경쟁국처럼 파격적인 정책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시절 최초로 국가 차원의 AI 육성 방안을 만들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AI 부문에 막대한 자금을 퍼붓고 있다. 우리도 AI 투자 활성화와 인재 육성, 초격차 기술 개발을 위한 정책적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과감한 규제 혁파를 통한 AI 생태계 조성도 시급한 과제다. 무엇보다 글로벌 관점에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고쳐나가야 한다. 우리 과학기술계는 마치 고립된 섬에 있는 듯하다. 이래서는 발전하기 어렵다. 기술 경쟁력을 높이려면 다양한 인재 풀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의 R&D 정책은 어떻게 개선돼야 하는가.

△특정 기관이나 특정 분야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하다. 우리는 과학기술 혁신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이권 다툼을 벌이는 경쟁 구조에 머물러 있다. 예산 따먹기에 급급하다 보니 로비 활동이 성행하고 불공정 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금처럼 과학기술 정책이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자신과 관련된 분야만 키우겠다는 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꾸준하게 전략적으로 밀어붙이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백악관 직속으로 과학기술 분야의 기획팀을 운영하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시대 변화에 맞춰 25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조정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규제가 여전히 신사업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데.

△미래 성장 동력인 바이오 분야는 여러 규제로 인해 글로벌 시장 진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나 신약 개발 과정에서 까다로운 조건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민간의 의욕을 꺾는 규제들이 너무 많아 스타트업도 투자하기 힘든 상황이다. 국회에서 매일같이 규제법을 양산하니 정부의 개선 노력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가능하겠는가. 특정 지역을 선정해 상속세·증여세 부담을 완화해주고 ‘선(先)사업 허용, 후(後)규제 정비’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급격히 약화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 결정적 변곡점에 서 있다. 영원한 2류 국가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것인지의 기로에 놓여 있다. 과학기술 분야는 더욱 그렇다. 1~2년 단위로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치고 나갈 대표적인 분야가 서비스업이다. 서비스산업을 키워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50~60%로 끌어올려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 국가 전체적으로 산업 생태계를 전환해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갖고 다양한 인재 풀을 키우고 사회 전반의 소통 구조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He is···

1955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KAIST에서 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프랑스 국립정보통신대(ENST)에서 전산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초대 이사장을 거쳐 2014년부터 3년 동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돌아와 서울대 AI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2021년 9월부터 한림대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정상범 수석논설위원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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