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내 고양이 수명은 당신의 농담거리가 아니다
“요즘은 개가 너무 오래 살아.” 오랜만에 만난 30년 지기들과 식사를 하던 중 나온 말이다. 지난 11년간 나와 함께했지만 한 번도 이 친구들에게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던 우리집 고양이들이 처음으로 대화의 주제로 막 등장한 참이었다. 농담이려니 하고 넘기는데, 다른 친구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빨리 죽을까봐 개를 못 키우겠어.” 그러고는 개 키우는 사람들이 개에게 들이는 과도한 정성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오가는 말의 한가운데에서 어쩐지 애타는 마음이 된 나는 이내 어쩌라는 건가 싶어졌다. 일단은 내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왜 갑자기 다른 집 개 이야기로 튀었는지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니, 친구들에게도 연결되는 맥락은 있었다. 하나는 개가 너무 오래 살아 문제고, 하나는 개가 너무 일찍 죽어 문제인 와중에, 둘 다 어쨌거나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가 마땅치가 않았던 것이다.
별 영양가 없는 농담들로 상황을 모면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로, 나는 종종 그날의 대화를 곱씹는다. 마음에 상처가 깊이 남았기 때문이다. 삶의 방식이 사뭇 달라 서로를 잘 이해할 수는 없어도 나의 일부분을 이루는 친구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뱉은 ‘내 가족의 죽음’을 상상하도록 하는 말들은 더 지독하게 내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사실 친구들은 악의 없이 그저 무심했을 뿐이다. 그러니 대수롭지 않게 반려동물의 수명과 죽음을 화제로 삼을 수 있었을 터다.
반려인구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반려동물이 가족임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특히 ‘펫로스’, 즉 ‘반려동물이 죽은 뒤에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은 무시당하고 외면받기 십상이다. 이 고통은 때로 인간의 언어를 넘어서버려 충분히 설명할 수도 없다. 이 ‘부정당한 고통’에 대해 생각하던 중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복제하는 사람들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러나 이 소식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동물복제는 그 자체로 착취적인 동물실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뿐만 아니라 난자를 제공하는 공여견과 출산을 하는 대리모견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때로 ‘개농장’에서 폭력적으로 충당된다. 내 고통을 달래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또 다른 고통으로 내몬다니, 상상할 수 없다. 내 반려의 DNA를 복제하는 것 외에도 세상을 떠난 그를 내 삶으로 끌어안는 방법은 있을 것이다. 켄 로치의 <나의 올드 오크>(2023)는 그런 가능성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TJ는 폐광촌에서 낡은 펍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의지할 데라곤 반려견 마라뿐이지만, 곧 무참한 사고로 마라를 잃고 만다. 이때 TJ에게 위로를 건넨 건 최근 그의 동네에 정착하게 된 시리아 난민 야라다. 동네 원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준 TJ를 위해 야라는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그의 상실에 애도를 표한다.
이를 계기로 TJ와 야라는 동네에서 밥을 나눠 먹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낯선 타인과 밥을 함께 먹는 관계(食口)가 되는 시간은 부서진 마을 공동체를 다시 쌓아올리는 작은 변화로 이어진다. 영화는 “함께 먹을 때 우리는 단단해진다”는 탄광 노동자의 오래된 격언을 2024년 스크린으로 되살려 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애도의 가치를 본다. 진실한 애도는 때로 나를 부숴 변화시킨다. 마라의 의미가 TJ의 ‘마라 이후의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서 이 말만은 꼭 남겨두고 싶다. 우리가 인간을 만나 가족을 만들고 일상을 나눌 때 그의 죽음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반려동물과도 마찬가지다. 끝은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닥쳐오겠지만, 지금 바로 이 순간 함께 좋았다면 오늘 하루는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서 누구와의 관계이든 반려는 이미 아치랍고 이미 충만하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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