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우웨이
가끔 인간도 곰처럼 겨울잠을 잔다면 참 좋겠단 생각을 해봐. 동면하고 깨어나 삼일절 만세를 부르면서 싸돌아다니고파. 겨울에 달리지 않던 말이 봄에 푸른 들판을 내달리듯. 무위도식을 나쁜 뜻으로만 여기는데, 너무 조이고 바지런한 인생을 상찬하는 세태 때문이다.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먹는 일’은 사실 인생 모두가 바라는 바 아니런가.
중국 사람들이 ‘우웨이’라 말하는, ‘무위’의 인생 철학은 다들 알고 계실 터. 특별히 겨울 시즌에 눈보라 눈길을 피해 바깥 출타를 줄이고, ‘잘 먹고 잘살기 경쟁대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얼마간 문 닫고, ‘우웨이한 삶’을 살아보려 노력한다면 당신도 세속 사회에서 도사 도인쯤 될 수 있겠다. 얼치기, 돌팔이 도사면 또 어때. 커튼을 쫙 펼치면서 권력과 친분을 과시하는 어마무시한 도사가 현존하는 마당인데, 조무래기 도인 도사쯤이야 많아도 상관없겠다.
우웨이도 뭔가 하긴 하는 것인데, 실제로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니 모순되면서 동시에 묵직한 가르침을 안긴다. 우웨이, 그러니까 무위를 배우려고 팔도강산 명망 있는 스승을 찾아다니다가 실망들 하고, 무위 철학으로 석박사 논문을 쓰려다가 탈모에 시달리며 우울증을 앓는 범부도 간혹 봤다. 호텔 방에 들어가 실내용 가운 하나 걸치면 충분한 휴가. 우웨이의 도, 깨달음은 매우 가까이 있다.
보그 편집장 알렉산드라 슐먼이 쓴 <옷의 말들>이란 책에서 호텔의 실내용 가운은 ‘인생의 환승 라운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동하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목욕을 마치고 나와 옷을 입기 전에 걸치는 옷.’ 나도 실내용 가운을 걸치고서 우웨이한 아침을 맞이한다. ‘오늘 입을 옷’을 골라 입지 않아도 되는 프리랜서의 여유랄까. 물론 뒤따른 쓴맛도 있는데, 남들 고기 사 먹는 월급날 ‘방콕 말고 방콕하면서’ 손가락을 빠는 신세란 것. 하여도 여간해선 굶어 죽진 않는 게 적당히 분수에 맞춰 사는 묘안이 또 생긴다. 하늘의 음덕으로 공중의 새들도 끼니를 얻고, 들꽃도 제때 핀다고 했다.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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