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의 경제읽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기자 2024. 1.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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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물가 안정과 고용 극대화라는 두 가지 목표(dual mandate)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목표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고용이 강해져서 임금이 오르게 되면 물가를 자극하게 된다. 물가를 제어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실물 경제가 둔화되어 실업률이 높아지기에 고용 시장을 냉각시키게 된다.

이론적으로 모순으로 보이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만큼 연준의 통화 정책에는 상당한 신중함이 묻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월 초 댈러스 연준의 로리 로건 총재는 현재 연준이 진행하고 있는 긴축 프로그램 중 하나인 양적긴축(Quantitative Tightening)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고자 연준이 진행했던 대표적 돈 풀기 프로그램인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의 반대 개념으로 당시에 풀렸던 자금을 매월 950억달러씩 회수하던 현재의 페이스를 줄여나가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얼핏 보면 긴축의 강도를 줄여준다는 점에서 연준이 긴축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내막은 다소 다르다.

만약 시중 유동성을 현재와 같은 속도로 빠르게 줄여나갔을 때 과도하게 높은 금리와 맞물려 금융 시장에 예상 외의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는데, 이 경우 긴축은커녕 도리어 금융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재차 양적완화를 재개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너무 강한 긴축은 도리어 돈 풀기로의 빠른 선회를 낳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이 경우 안정세를 보이던 물가를 다시금 자극할 수 있다. 연준이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는 것이다. 결국 로리 로건의 발언은 긴축에서의 완전한 후퇴가 아니라 보다 오랜 기간 긴축을 이어가기 위한 숨고르기를 위한 전략적 후퇴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임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였던 제임스 불라드 역시 최근 인터뷰를 갖고는 3월에도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음을 강조했다. 연준 총재직을 수행할 당시 상당히 긴축을 선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0.75% 금리 인상 혹은 5%가 넘는 기준금리가 필요함을 선제적으로 주장했던 인물이었기에 시장의 기대보다 다소 빠른 3월 기준금리 인하까지 주장하는 것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조기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불라드의 핵심은 현재의 기준금리 레벨 자체가 높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률은 3%를 하회하는데, 5%가 넘는 기준금리가 유지되면 높아진 금리로 인해 실물 경제의 타격이 강해질 수 있고,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0.5% 금리 인하와 같은 매우 강한 통화 완화로 선회해야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전히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큰 폭의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면, 고용 시장도 충격을 받고 이걸 메우기 위한 과격한 금리 인하에 물가도 재차 불안해질 수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 봉착하지 않으려면 현재 수준에서 빠른 기준금리 인하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물가 안정과 고용의 극대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고자 연준은 항상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연준의 목표치인 2%에 도달하지 않은 상황이기에 긴축에서 물러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강한 긴축을 계속 이어나가서 성장을 흔들게 되면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성장에 충격을 최소로 주는 수준에서 긴축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불라드나 로리 로건의 발언이 긴축에서의 완전한 후퇴를 의미할까? 보다 오랜 기간 긴축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긴축의 속도를 다소 줄여주는 전략, 즉 2보 전진을 위한 1호 후퇴가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물가 불안이 남아 있지만 기준금리 인하와 긴축의 속도 조절이 회자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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