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총선, 양당 정치를 다당 정치로 전환하는 전기로 삼아야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국정 안정을 위해 국회 과반 의석 확보가 지상 목표다. 그 꿈이 실현되면 그간 독주 통치 스타일에 비춰 볼 때, 윤석열 대통령은 독단적 국정 드라이브를 즐기는 가히 ‘민선 황제’급으로 등극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검찰독재 정권 폭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과반 의석 필승’이 절박한 과제라고 언필칭 강변한다. 그들이 실제 단독 과반 의석을 거머쥐면, 입법 폭주와 대통령의 거부권·시행령 정치의 충돌로 입법 교착과 국정 난맥상이 22대 국회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될 것이다.
이처럼 양당제에는 여든 야든 특정 정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독식하면, 민주주의의 정상적 궤도를 이탈하는 ‘제도적 원심력’이 내재한다. 양당제는 사회의 다양성과 통합성이 공존하는 다사불란(多絲不亂)의 구심력 정치로 작동할 수 없으며, 양극단적 증오 정치를 촉발하는 주범이다. 따라서 우리는 양당 정치가 집착하는 ‘과반 의석’ 명제의 신화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양당제를 대체하는 안티테제는? 어느 당도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다당제다. 해외 연구들에 따르면 대통령제는 다당제와 조합할 때 정상적으로 작동할 개연적 확률이 높아진다. 다당 정치는 정당 간에 권력을 분점·공유하기에, 정당 간 교차 파트너십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멸이라는 파국이 올 수밖에 없는 구도다.
우리 헌정사에 이런 관점을 검증한 초보적 사례가 있다. 1988년 13대 총선 결과 집권당인 민정당(43.14%)이 과반 의석에 못 미쳐 DJ 평민당(23.75%), YS 통일민주당(20.07%), JP 공화당(11.70%) 등 여소야대의 ‘4당 분립체제’가 등장했다. 4당 간에 입법권 분점이 이뤄져 견제-협상-조정 기제에 기초하는 ‘황금의 공동통치(golden co-governance)’가 작동한 것이다. 대통령은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려 해도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었고, 당시 통과된 법안들은 여야 합의로 처리되었다. 다당 정치가 국회-대통령 협치를 견인했고, 입법 효율성을 높이는 합의제 거버넌스의 인프라였다.
작금 제3지대는 신당 창당으로 군웅이 할거하는 형국이다. 정당이란 사회의 ‘부분’ 이익을 조직·집약·대표하는 정치 결사체다. 그렇기에 출현할 제3, 4의 신당은 ‘누구’의 이익을 집중적으로 대표하고, 특히 노동·복지·남북관계 관련 ‘어떤’ 가치와 정책 비전을 지향하는지, 차별화된 정당 정체성과 정치철학의 핵심축을 제시해 유권자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거대 정당 내 파워게임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패장들의 선거 공학적 이합집산이라는 세간의 혹평을 잠재우고, 여름밤 반딧불처럼 명멸하는 운명을 피할 수 있다. 모두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될 수 없는 법. ‘국민 전체 이익’을 대표한다는 레토릭으로 백화점식 정책을 나열하는 전체주의 정당의 길을 가면 안 된다. 4월 총선에서 제3, 4의 신당이 기존 거대 양당 중 어느 당에도 과반 의석을 허용치 않는 유의미한 의석 점유율을 과시하는 정치적 파괴력을 보인다면, 그들 당은 국회의 정책 의제화와 입법화 과정에서 ‘회전축 정당(pivotal party)’이 될 수 있다. 즉 과반 의석을 좌우하는 캐스팅 보트를 쥐고 때론 민주당, 때론 국민의힘을 연정·협치 파트너로 번갈아 택하는 등 정책연합과 입법연합 정치의 절묘한 권력 균형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다당 정치에선 어제의 경쟁 정당이 오늘의 연정·협치 파트너가 되고, 역으로 오늘의 연정·협치 파트너가 내일의 경쟁 정당이 되는 사이클을 연출한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유권자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거대 양당 독점정치,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거대 양당의 ‘오월동주 뱃놀이’ 정치와 결별해야 한다. 총선에서 유권자 대중이 녹색정의당 등 제3, 4 정당에 한번 눈길을 보내고 힘을 실어주는 기회가 온다면, 우리는 한국 정치판의 드라마틱한 변혁 효과를 목도할 수 있으리라.
선학태 전남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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