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美 약해보이면 더 세게 나와… 도발 수위 끌어올릴 것” [창간35-인터뷰]

박영준 2024. 1. 3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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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 美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
우크라·중동·대선 등으로 얽매인 미국
아무것도 못 하는 지금이 북한에 호재
김정은·푸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
북·러 밀착 강화… 상호방위조약 가능성
김정은 유고 땐 김여정 새 지도자 유력
양안문제 미·중 갈등 부상 우려는 낮아
세계일보가 창간 35주년을 맞은 2024년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경제안보 및 역학관계 변화 가능성에 세계의 이목이 그 어느 때보다 집중된 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최근의 북·중·러 밀착,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등이 어떤 변수와 추동력에 따라 전개되느냐에 한반도는 물론 국제정세에 지대한 파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세계일보는 창간을 기념해 미국과 대만을 대표하는 석학을 인터뷰해서 올해 역내에서 펼쳐질 가능성이 있는 정세 시나리오와 이에 대응해 설정해야 할 한국의 좌표를 전망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있고 두 달여가 지난 2013년 4월29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 전문가 5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대북 정책과 관련한 조언을 들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분노로 대북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성윤 당시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외교안보전문대학원) 교수는 다른 의견을 냈다.
그는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척하겠지만 결국에는 더 큰 지원을 할 것이라고 오바마에게 말했다. 실제 2013년 북·중 교역 규모는 65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 북한 및 외교관계 전문가다. 오바마 등 여러 행정부에 자문한 바 있다. 그는 터프츠대에서 23년간 재직한 뒤, 지난해 미 의회가 설립한 연구기관인 우드로윌슨센터 국제 선임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선임연구원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워싱턴 윌슨센터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북한이 도발 수위를 또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속수무책인 지금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는 절호의 기회라는 이유에서다.

우선 그는 “북한이 올해 도발을 멈출 이유가 별로 없고, 점차 큰 규모의 도발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동기가 있다”고 짚었다. 핵실험, 국지 도발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11월에 연평도 포격과 같은 정도 수위의 도발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미국이 약해 보일 때 더 세게 치고 나온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베트남전쟁 때인 1968년 김신조 사건과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이라크전쟁 때인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등을 예로 들었다. 우크라이나·중동 전쟁과 대통령선거 등으로 미국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북한에 호재라는 것이다. 
이성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외교 선임연구원(전 미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교수)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워싱턴 윌슨센터 사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최근 북한의 도발 상황과 동북아시아 정세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북한이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려 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조만간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봤다.

그는 “북한과 러시아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면서 “1961년 김일성 주석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북·소 군사조약을 체결한 이후 소련 패망으로 없어졌던 조약을 다시 맺으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보면 2019년 4월 정상회담과 비교해 두 정상이 한층 더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2019년 당시 푸틴 대통령이 회담 이튿날 중국을 방문하면서 러시아에 혼자 남겨진 김 위원장이 격분했다는 미 행정부 고위층의 전언도 전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 만찬에서 와인과 보드카를 마신 뒤에도 숙소로 돌아와 술을 아주 많이 마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다 이튿날 대부분의 일정을 취소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당시 정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2019년과 비교하면 지난해 두 사람의 몸짓, 특히 푸틴의 행동이 훨씬 더 정중하고 (김 위원장을) 존중하는 모습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이런 북·러 관계 강화를 경계하겠지만 과거와 마찬가지로 북한을 달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김정은이 푸틴 대통령의 방북 전에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모두에게 밀착해 더 큰 지원을 얻어내려는 의도가 있고, 그 의도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2013년 4월 오바마 대통령과 면담 당시 비화를 다시 예로 들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시 주석과 자신의 통화를 소개했는데, 시 주석이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을 겨냥해 ‘한 수 가르쳐 주겠다”(I’m going to teach Kim Jong Un a lesson)’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은 그 통화를 굉장히 믿고 싶어했다. 중국이 대북 지원을 차단할 것이란 생각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그 반대의 의견, 즉 중국이 북한과 더 밀착할 것이라고 오바마에게 말했다.
이성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외교 선임연구원(전 미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교수, 윗줄 왼쪽부터 네 번째)가 2013년 4월 29일 미국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아랫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 주재로 열린 긴급 한반도 전문가 회의에 참석한 모습. 이성윤 선임연구원 제공
이 선임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북한에 또 다른 선택지가 생긴다고 우려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취임 1∼2년 후 두 정상이 다시 만날 수 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방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이 이미 3차례나 만난 만큼 김 위원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방북 제안을 할 수 있고, ‘쇼맨’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제안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에도 북한은 그의 재선 제한 임기를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2기에 외교적 성과를 내려고 할 것이고 북한 역시 바이든 행정부의 마지막 임기를 활용해 주한미군 부분 철수 등의 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고 했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에 따른 미·중 갈등은 당분간은 부상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선임연구원은 “대만 총통 선거 이후 중국 역시 특별한 군사훈련이나 위협은 좀 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서는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전념하고 있고, 북한도 한반도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는 대만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후계 구도와 관련해 “김정은 유고 시 새 지도자로 등극할 사람은 당분간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여정은 김정은만큼 특별한 지위에 있다”면서 “김정은과 김여정을 보면 동급에 가까울 정도로 서로 신뢰하는 모습, 형제간의 애정을 볼 수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2009년 북한에 억류된 미 여기자 2명을 석방하기 위해 방북했을 때도 당시 22세 김여정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심 보좌관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김여정 부부장을 다룬 ‘더 시스터’를 냈다. 책은 영국과 독일, 우크라이나, 핀란드, 포르투갈, 폴란드, 대만, 싱가포르 등 10개국에서 번역이 확정됐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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