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여성 병역의무화’ 대신 젊은 중장년층 ‘시니어 아미’ 만들자 [왜냐면]

한겨레 2024. 1. 31. 19:00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성별
말하기 속도
번역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오른쪽)가 지난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개혁신당 원내대표를 맡기로 한 양향자 의원과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화’ 정강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최영진 |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시니어아미 공동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화”를 정책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다시 한번 여성 군복무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양성평등에 부합하는 일”이라며 박수를 보내지만, 다른 쪽에서는 “젊은 남성 표를 의식한 젠더 갈라치기 공약”이라 쏘아붙이고 있다. 이 대표는 “한쪽 성별만 부담했던 병역을 나머지 절반이 조금씩 더 부담해 나가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할 경우 “연간 1만~2만명가량의 병역자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얼핏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공약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저출산 현실에 대한 고민이 없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출산과 육아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공무원을 희망하는 여성들에게 군대까지 갔다 오라고 하는 것은 출산의 부담을 더욱 키우는 것이다. 지난해 9급 공무원 합격자 평균 나이가 29.4살이다. 절반이 여성이다. 대학과 군 복무를 마치고, 노량진 고시학원에서 시험 준비하면 서른이 넘어야 공무원이 된다는 얘기다. 경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처음 들어와 업무 배우고 하다 보면 4~5년 후닥 가버린다. 결혼을 빨리한다고 해도 30대 중반이 된다. 여성이라면 그 나이에 출산과 육아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분만 예정일을 기준으로 만 35살 이상을 ‘고령 임신’으로 규정한다. 공무원을 하려는 여성들에게 군복무를 의무화하는 것은 위험한 고령 임신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나라가 고려할 정책이 아니다.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여성의 군복무가 병력 부족을 해결하는 합리적 대안도 아니다. 이 대표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활관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다. 남군과 여군 간 역할 분담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게 마련이다. 여군을 본격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만~2만명의 병력자원을 확보하느라 수십 배의 예산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며, 감당하기 힘든 관리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될 것이다.

게다가 병력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더 쉽고 효율적인 대안이 있다. 자원입대를 희망하는 건강한 시니어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 55~75살인 약 691만명의 남성이 있고, 이 가운데 젊은이에 뒤지지 않은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이들이 꽤 많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국가를 위해 다시 한번 총을 들 각오가 되어 있다. 691만명 가운데 1%만 자원한다면, 약 7만명의 예비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병사들이 받는 월급까지 지급한다면 20~30만명은 충분히 동원할 수 있다.이미 ‘시니어 아미’라는 조직이 만들어져 자발적인 입영훈련을 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양질의 병력자원이 있는데, 굳이 삶의 온갖 부담을 짊어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젊은 여성에게 군복무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

결론적으로 여성 군복무 의무화는 출산율을 높이고자 하는 국가적 과제에 배치되는 공약이다. 병력이 꼭 필요하다면 시간적 여유가 있는 건강한 시니어들이 ‘우선적으로’ 젊은 세대의 몫을 분담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도 해야 하고 직장도 잡아야 하고, 가정을 일구며 출산과 육아를 감당해야 할 젊은 여성에게 병역의 의무까지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여성 차별적인 나라다. 26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양성평등을 핑계로 여성도 군대 갔다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세상을 너무 좁게 보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가 “제 생각이 짧았네요”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눈앞의 선거가 중요하겠지만, 표보다는 국가를 생각하는 그런 정치인이었으면 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