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앞으로 인권위 권고에 개의치 않겠다는 것인가 [왜냐면]

한겨레 2024. 1. 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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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하 공동투쟁)이 지난해 5월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렸던 야간 문화제를 경찰이 원천봉쇄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원규 | 변호사·전 경찰청 인권위원·전 국가인권위 조사관

경찰청 감사관실이 최근 경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적극적 법 집행 지원을 위한 감사 기능 업무개선 성과 분석 결과’라는 글에서 적극적 법 집행의 저해 요소 가운데 하나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의 무조건적 수용”을 들었다고 한다. 경찰이 추구해야 할 목표가 “적극적 법 집행”인데 “인권위 권고의 무조건적 수용”을 이를 저해하는 해악적 요소로 평가한 것이다.

인권위 권고는 명령이 아니다. 입법자가 인권위법을 제정하면서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인권위에 시정명령권 대신 권고권을 준 것은 국가기관이 국민의 인권 보장에 소홀한 점이 없었는지 스스로 들여다보고 시정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경찰이 “국가인권위 권고의 무조건적 수용”을 해악이라고 평가한 것은 앞으로는 인권위 권고에 개의치 않겠다는 것인가? 경찰이 해악으로 평가한 것이 인권위 권고 수용 그 자체가 아니라 “무조건적” 수용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라면 경찰이 인권위의 권고 취지를 잘 새겨서 경찰 업무가 보다 인권 친화적으로 바뀌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을 텐데,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은 그런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우리 헌법은 헌법 원리를 규정한 총강 바로 뒤에 통치구조 대신 국민의 인권을 배치함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핵심적 가치가 자유와 평등과 연대이며, 이러한 가치 위에 국가기구가 존립하고 있음을 천명했다. 이런 헌법 아래서 평화 시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경찰이 인권위 권고에 개의치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적극적 법 집행이란 어떠한 목표를 위해 법 집행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목표’ 속에는 인권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고도 성장을 위해 노동자의 인권이 무시됐으며,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간첩이 조작됐다. 사회 혼란을 방지한다는 핑계로 무고한 시민이 학살됐으며, 도시 미관을 위해 힘없는 부랑인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 사건들에서 경찰은 수시로 동원됐다.

경찰청은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의 ‘인권 경찰’ 기조에 발맞춰 경찰의 변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경찰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개혁위는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집회·시위 ‘관리’와 ‘대응’에서 집회·시위 ‘보장’으로 전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집회·시위 자유 보장 방안”, “국가인권위 권고 수용 원칙”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인권 경찰의 제도화 방안”을 권고했다. “남녀 통합모집 등”이 포함된 “경찰 조직 내 성평등 제고 방안”과 “수사확대 암시·먼지털이식 수사로 자백 유도 금지 등 수사절차 개선 등”을 내용으로 한 “수사과정에서의 피의자 인권 등 보장 방안” 등 많은 인권 보장 방안들을 권고했다. 경찰청은 개혁위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경찰청은 국민의 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에 조직의 온 힘을 다하겠다고 천명한 지 불과 6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적극적 법 집행을 위해서는 인권 보장도 무시할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경찰청의 태도가 그때도 권력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도 권력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음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이러한 경찰을 국민이 존중하고 존경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친일의 과오를 떠안고 출범한 경찰이 독재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의 지탄 대상이 된 업보 때문에 민주화가 된 뒤에도 국민에게서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도 경찰에게 수사권을 주는데 가장 주저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경찰에게 온전한 수사권을 주면 인권 침해가 더 심해질까 봐 국민이 불안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지 몇 년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표변하는 경찰을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경찰이 권력자의 혀끝에 놀아나는 조직이 아니라 정치 환경의 변화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국민의 인권 보장에 깊은 관심을 갖는 조직임을 보여줘 국민의 신뢰를 얻을 절호의 기회다.

올해는 용산참사 15주기이다. 망루에서 농성 중인 철거민을 체포하겠다고 헬리콥터와 특공대까지 투입한 국가폭력의 그늘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자체 조사기구를 만들고 보고서를 발간하고 인권 경찰을 다짐한 건 쇼였다는 말인가? 권위주의 시대로의 역주행은 회복하기 힘든 사태를 자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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