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에 ‘화개장터’를…중립지대서 남북이 어우러집시다”
“남북 관계 같은 것은 정부가 바뀌어도 꾸준히 (평화 화해 기조가) 이어져 가야 합니다.”
부산 범어사 방장인 정여 스님은 “남북이 극과 극이 아니라 약간의 평화 무드가 좀 있어야지 국민도 더 안정되지 않겠는가”라며 “남과 북이 티격태격하더라도 내면에 흐르는 민족 감정이 흘러가게끔 그렇게 유도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남북이 강 대 강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에둘러 경계한 것이다.
‘삼국유사’ 소장한 영남 3대 사찰 최고 어른인 2대 방장으로 추대
2009년 태양광 설치 위해 방북
비무장지대를 동질성 회복 장으로
쌀·잡곡 등 물물교환하면 서로 이익
“경제적 우위인 남한이 통 크게 굴고
사랑·자비로 정치·경제도 끌고 가야”
범어사는 부산 금정구 금정산 동쪽 기슭에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다. 경남 합천군 해인사, 경남 양산시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 불린다. 신라 문무왕 18년(678년)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 가운데 하나로 창건했다. 전국 사찰 중에서 유일하게 국보 ‘삼국유사’를 소장하고 있다.
정여 스님은 2008~2012년 범어사 주지를 거쳐 지난해 11월 범어사 2대 방장으로 추대됐다. 범어사 방장은 조계종 25교구 중에서도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총림’의 최고 어른이다. 주지를 추천할 권한이 있다. 임기는 10년이다.
지난 29일 범어사 안양암에서 만난 정여 스님은 얼어붙은 남북 관계의 해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무장지대에 남북 물물교환 장소를 만들어서 일상적인 교류를 하고 왕래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는 10여년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미국 뉴욕에서 만나 남북교류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비무장지대에 물물교환 장터를 만들면 여러 가지 생활 필수품을 교환할 수 있어요. 남한은 쌀이, 북한은 잡곡이 많이 나옵니다. 쌀과 잡곡을 교환하면 양쪽이 이익입니다. 농기구도 교환하고 남한의 진돗개와 북한의 풍산개를 교환해도 됩니다”.
그는 방북 경험이 있다. 북한의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맡았던 그는 2009년 8월 태양광 발전 설비 무상 설치를 논의하고자 방북했다. 이후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북한에 태양광 발전 설비 설치는 무산됐다고 한다.
그는 또 남북 물물교환 장터 근처에 홍콩처럼 자유무역지역을 만들자고 했다. 그는 “이산가족이 이제 80~90살이 넘었는데 자유무역지역에 호텔을 만들어서 일주일 동안 이산가족이 머무르면서 중립국 화폐를 사용하며 자연스럽게 계시다 나올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화개장터에서 만난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처럼 물자교환을 하는 장터를 계속 이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동질성을 회복하고 가까워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남북 무역도 가성비가 좋다고 했다. 그는 “중국 단둥에 가보니까 북한의 광물이 중국에 너무 싸게 들어가고 있더군요. 이것을 남한에서 좀 사주면 남과 북 모두 상당한 이익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서 먹고사는 기본적인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북한이 문호를 개방하면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 수 있지 않겠느냐. 남한~북한~러시아를 잇는 철도를 만들면서 평양 등 주요 도시에 무조건 1시간 쉬게 해서 장도 보도 식사도 하고 다시 타고 가게끔 하거나,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돈을 받아도 됩니다”고 말했다.
그는 남한이 좀 더 통 큰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약한 사람이 큰소리를 치는 거지 힘 있는 사람은 큰소리를 안 지르는 법입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북한을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되고 북한의 정치체제도 우리가 어느 정도 인정해 가면서 서로 마음을 다치지 않게끔 접근해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반도 통일 문제는 주변국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강대국들 사이에 새우 등이 터지는 위치에 놓인 남북은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는 “미국·중국 등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에 휘둘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강대국의 논리에 휩싸여 우리 민족 간의 동질성을 너무 훼손시키면 안 되고 꾸준히 서로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비는 슬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랑이라는 게 빠지면 삭막한 세상이 됩니다. 우리는 사랑과 자비로 정치나 경제나 모든 면을 그렇게 끌고 가야만 됩니다.”
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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