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무죄판결의 의미

2024. 1. 3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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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다. 결론은 검찰이 제기한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검찰의 항소 여부에 따라 2심 또는 3심까지 갈 수도 있지만,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애초에 사법농단의혹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검찰의 수사 및 기소가 무리하게 진행되었고, 법원의 무죄판결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도 있다.

검찰의 기소 내용이 무리한 것이었다는 평가의 핵심은 직권남용의 확대 적용이다. 여기서 양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를 하나하나 따져볼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혐의는 이른바 직권남용에 관한 것이었고, 법원에서 무죄로 판단한 주요 논거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양 전 대법원장이 관련 혐의에 관한 직권이 없었거나, 직권에 속하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부당한 것이 아니었거나, 부당한 직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더라도 그러한 의도를 갖고 공모한 것이 아니라는 점으로 인해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을 둘러싸고 언론매체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 앞서 직권남용죄의 특성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형법 제123조가 규정하고 있는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죄를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직권'과 '남용'의 범위이다. 이를 넓게 해석하면, 공무원의 불법과 비리는 모두 직권남용에 해당하게 된다. 예컨대 형법상 별개의 범죄로 규정되어 있는 불법체포, 불법감금, 폭행, 가혹행위, 수뢰(뇌물 수수) 등도 모두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지나치게 포괄적인 것이 되어서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

그로 인해 법원에서는 오래전부터 직권남용의 인정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직무상의 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했어야 하며, 그 위법·부당의 정도가 심하고, 이를 통해 타인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결과가 발생해야 한다는 요건의 충족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엄격한 기준으로 인해 직권남용죄는 한동안 사문화되다시피 했었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의 이른바 국정농단의혹 사건을 계기로 직권남용죄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고, 이에 대하여 직권남용죄의 정치적 오남용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경제공동체라는 논리로 최순실의 뇌물죄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확대하였던 법원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권남용죄 적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도 직권남용죄의 확대 적용이 경제공동체의 인정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제 양 전 대법원장 문제로 다시 돌아와 보면, 직권남용죄의 확대 적용이라는 논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 무죄판결의 핵심이라는 점은 분명하며, 이를 왜곡된 논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검찰에서 직권남용죄 이외에 다른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항소가 무의미할 것이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의 불법과 비리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이를 현행법으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문제라는 식의 접근은 적절치 않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바로 그런 식으로 접근했고,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양산했던 결과가 무죄판결인 것이다.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비리인지에 대한 판단 자체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재판에 대해 한 마디만 해도 재판개입이고 직권남용이라면, 대법원장의 업무수행이 불가능하게 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구체적이고 심각한 개입이 있었을 때 불법이라고 볼 수 있는지와 직권남용으로 인정되는지는 별개가 아니다.

기존 판례에서-마치 탄핵심판에서 불법의 중대성을 따지듯이-불법과 비리의 중대성을 직권남용의 요건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도외시하고, 재판 결과에 대해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한민국의 법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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