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불평등의 나라가 불평등을 걱정하는 이유 [마켓톡톡]
일론 머스크 성과급 소송 패소 후
“델라웨어주서 창업 마라” 뒤끝
테슬라 본사 2021년 텍사스행
더 많은 세금 감면 받기 위해서
미국 내 조세회피처 주 증가세
지나친 직접세 면제로 불평등 심화
미 상속세‧증여세 감면도 골치
미국에서 법인세‧소득세를 폐지하는 주정부가 늘어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델라웨어주‧텍사스주를 테슬라의 '둥지'로 선택한 것도 결국 세금 감면 때문이었다. 직접세의 감세는 현재 심각한 수준에 와있는 미국의 불평등 문제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 조 바이든의 상속세 강화 공약도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의 감세와 불평등 문제를 알아봤다. 감세책을 펼치는 윤석열 정부에도 시사하는 점이 있을 듯하다.
■ 머스크와 델라웨어=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테슬라 주식 9주를 가진 소액주주와의 소송에서 패해 74조원 규모의 주식 성과급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델라웨어주 법원이 1월 30일(현지시간) 테슬라의 소액주주 리처드 토네타가 "테슬라 이사회가 2018년 머스크에게 주기로 한 560억 달러(약 74조원) 규모의 주식 성과급은 무효"라며 회사와 머스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판결 후 자신이 인수한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절대 여러분의 회사를 델라웨어주에서 창업하지 말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머스크는 그간 "나는 테슬라 지분 25%가 없는 상황에서 회사를 인공지능(AI)와 로봇산업의 리더로 키우는 데 불편함을 느낀다"며 지분을 더 달라고 이사회에 요구해왔다. 머스크의 현재 테슬라 지분은 13% 정도다.
그렇다면 머스크는 왜 2003년 델라웨어에 테슬라 본사를 세웠을까. 답은 간단하다. 델라웨어주는 미국 내에서 일종의 법인 조세회피처로 통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주마다 법인세‧소득세 부과 기준이 다른데, 델라웨어주의 법인세는 8.67%다. 'S코프'라고 부르는 절세 목적의 도관회사 설립도 허용해 법인세를 전혀 내지 않는 길도 열려있다. 델라웨어에는 법인의 판매세도 없다. 심지어 법인에 유리한 별도의 법인 전용 법원(Court of Chancery)까지 있다.
그래서 델라웨어주에는 사람보다 법인이 많다. 인구가 100만3000명에 불과한 델라웨어주에 월마트‧아마존 등을 포함해 법인 본사만 150만개가 있다.
■ 감세와 불평등=머스크가 델라웨어주에 회사를 세우지 말라고 한 것은 손해를 봤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사실 델라웨어주만 조세피난처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법인과 개인의 소득에 과세를 적게 하면서 조세피난처를 자임하는 곳은 2023년 현재 13개주에 이른다. 더구나 그 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2022년에만 35개주와 워싱턴DC가 감세안을 통과시키려고 시도했다.
개인이나 법인에 매기는 세금을 낮추거나 없애면 소득과 자산이 많을수록 자산 증식에 도움을 받는다. 이는 최근 미국에서 불거지는 불평등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지만, 2021년 기준 상대적 빈곤율은 1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급이다. 그만큼 불평등이 고착화했다는 건데, 그런 미국에서조차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이후 심해진 부와 빈곤의 대물림은 논란을 사고 있다.
현재 미국 재무부 장관인 재닛 옐런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직에서 내려온 이듬해인 2019년 보스턴 연방준비은행의 콘퍼런스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미국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심해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불평등은 대공황 이후 40년 동안 지속해서 완화했지만, 최근엔 19세기 이후 가장 심각한 지표를 보이고 있다."
옐런 전 의장은 "물론 기회가 완전히 균등하더라도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은 어느 정도 발생할 수 있지만, 경제 자원에 얼마만큼 접근할 수 있느냐가 기회 자체를 향상시킨다"며 "결국 결과의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전체 불평등을 영속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옐런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연준 자료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서 상위 1%가 소유한 상장사 지분의 비중은 2012년 1분기 48.5%에서 2022년 1분기 53.7%로 매우 커졌다. 파이낸셜타임스‧악시오스는 지난 5일과 10일 연준의 자료를 인용해 "주식을 보유한 미국인 가구의 비중이 2022년 58.0%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미국 가계의 주식 자산 중에서 93.0%를 상위 10%가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불평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지난해에만 미국의 상위 10%, 1%, 0.01% 부자를 연구한 중요 논문이 두개나 발표됐다.
■ 머스크와 텍사스행=테슬라는 2021년 본사를 텍사스 오스틴으로 옮겼다. 머스크가 창업한 스페이스X 본사는 여전히 캘리포니아주에 있지만, 지난해에만 20억 달러를 쓴 '스타십 프로그램'은 텍사스에 있다. 텍사스에도 법인세가 없다. 2008년에 프랜차이즈 회사에 과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세액공제 범위가 넓다.
그 결과, 텍사스에서 세금을 내는 기업의 평균 세율은 영업이익의 0.75% 정도다. 텍사스주는 2019년 "정부와 관계된 항공‧우주 기업의 비용을 공제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올해부터는 비용의 100%를 공제해준다.
2021년 텍사스의 세수 중 61.8%가 상품 판매세에서 나왔다. 누진적인 특징으로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는 직접세와 달리 간접세인 판매세는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물가를 자극하는 단점이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세수 중 판매세 비중이 16.9%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 바이든도 실패한 상속세 강화=앞서 언급했듯 고소득자나 대기업을 향한 감세는 미국에서도 논란의 도마에 오른 지 오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 전 '상속세 강화 공약'을 내놨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의 상속‧증여세(estate and gift tax)는 트럼프 정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09년 미국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는 순자산 350만 달러였다. 그런데 트럼프 정권이 세금 개혁 법안을 통과시킨 후 미국 국세청(IRS)의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는 2025년까지 점진적으로 늘어나게 설계됐다.
올해 기준으로 상속‧증여 재산이 1361만 달러, 부부 합산으로는 2722만 달러 이하면 유산 상속시 연방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 이상의 유산에는 최고 40%의 세율을 적용한다. IRS는 이 감세안이 끝나는 2026년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가 500만 달러라고 발표했다.
한번 감세를 택하면, 조세마찰이나 조세저항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원점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조세마찰은 과세에 불만을 표출해 집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고, 조세저항은 제도 자체를 부인하고 납부를 거부하는 행위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를 2009년 수준인 350만 달러로 되돌리는 것이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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