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기 성장 ‘정부 기여도 0%p’…세수펑크에도 줄감세, 돈이 없다
지난해 역대 최대인 56조4천억원 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한 건 일차적으로 정부가 경기 예측에 실패한 탓이 크다. 코로나19 당시 자산시장 호황 등으로 인한 이례적인 세수 호조세에 기대 정권 출범 첫해에 ‘향후 5년간 60조원 감세’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경기 부진의 골이 예상보다 훨씬 깊었다는 얘기다.
경기 오판에 3대 세목에서 50조원 펑크
실제 지난해 세수 결손액의 약 89%(50조원)를 차지하는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는 모두 대내외 경기 상황과 직결된 세목들이다. 지난해 법인세 세수는 1년 전보다 23조2천억원 줄어든 80조4천억원에 그치며 세수 100조원 선이 붕괴됐다. 대외 수요 감소로 반도체 대기업 등의 실적이 고꾸라졌던 까닭이다. 소득세(115조8천억원)도 토지·주택 등 부동산 거래 감소 여파로 양도소득세가 전년 대비 14조7천억원 급감하며 세수가 12조9천억원 뒷걸음질했다. 지난해 국내 연간 수입액이 12.1% 줄어들며 수입 물품에 붙는 부가세(73조8천억원)와 관세(7조3천억원)도 각각 7조9천억원, 3조원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지난해와 같은 세수 부족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 개선세가 아직 뚜렷하지 않은데다, 선거용 감세 정책이 추가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31일 기획재정부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지원 확대, 기업의 투자 세액 공제 확대 등을 위한 세법 개정안을 의원 입법안으로 발의해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 자산가도 가입할 수 있도록 신설하는 ‘국내투자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비과세 한도 1천만원을 적용하겠다는 내용도 새로 발표했다. 이런 감세 조처는 올해와 내년 세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재정 실탄 부족에 정부 성장 기여도 ‘0%포인트’
세수 부족 여파로 정부의 재정 운용 스텝도 꼬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경제는 연간 1.4% 성장했는데 정부 기여 몫은 0.4%포인트에 그쳤다. 잠재성장률(약 2.0%)을 밑도는 저성장 배경엔 정부의 소극적 재정 운용이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정부의 성장 기여도는 ‘0%포인트’였다.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예산상 예정된 지출을 쓰지 못하는 불용 규모가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11월까지 정부의 계획 대비 총지출 진도율은 85.9%로, 통상 11월 기준 진도율(90% 이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정확한 불용 규모는 2월 중 드러날 예정이다.
연말에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낮은 건 이례적인 현상이다. 통상 막판 재정 집행률을 끌어올려 경기를 방어하기 때문이다. 4분기 기준으로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0%포인트인 건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다.
올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올해 예산도 19년 만에 낮은 증가율(2.8%, 총지출 기준)로 빠듯하게 편성했다. 심지어 각종 추가 감세 조처로 세수가 기존 예상보다 훨씬 덜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다. 올해 민간소비와 건설경기도 지난해보다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재정의 뒷받침도 취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일부에선 정부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내심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재정이 빠듯한 상황에서 정부가 기댈 곳은 한은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다. 현재 한은은 아직 물가 수준이 높다고 보고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감세가 성장과 세수 증가로 이어지는 낙수효과가 검증되지 않은데다 기존 가계부채·부동산, 대중국 수출 위주 성장도 한계에 부닥친 터라 세수 부족 문제가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적게 걷고 적게 쓰는 작은 정부 기조가 고착화하면 주요국과의 산업 정책 경쟁은 물론 저출산 등 구조적 문제 대응에도 제약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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