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홍콩판 국가보안법’…‘정부 반감’도 단속 [특파원 리포트]
새로운 홍콩판 국가보안법의 밑그림이 드러났습니다. 홍콩 정부가 '홍콩 기본법 제 23조 입법(香港基本法第二十三條立法)'에 대해 공공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최근 관련 문건을 공개했습니다.
사실상 초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베일을 벗기 전부터 중국 정부가 추진해 제정된 지난 2020년 판 국가보안법으로는 다 단속하지 못하는 반정부 행위 일체를 뿌리 뽑기 위한 보완적 성격을 띨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앞서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우려가 나오고 있는지 '온건한 저항(軟對抗)'과 '원거리 저항(遠對抗)'의 관점에서 보도했었던 만큼, 이번 초안 내용 역시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연관 기사] 친중 ‘애국자’의 홍콩…‘온건한 저항’도 막는다 [특파원 리포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40336
■"2019년 시위도 간첩행위…폭도들, 국가안보 위협"
이번 문건은 기존 국가보안법이 규정한 국가분열죄와 정권전복죄에 대해서는 따로 새로운 내용을 담지 않았습니다.
대신 '국가 배반(叛國)', '선동', '국가기밀 절도', '간첩행위' 등과 관련해 기존의 법률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죄목을 신설함으로써 관련 범죄를 더 폭넓게 단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먼저 문건에서 현행법의 미비점으로 지목한 부분을 간략히 옮겨봤습니다.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 큰 틀에서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부분입니다.
▲'반역죄'는 실질적으로는 꼭 전쟁에 해당하지는 않더라도 그 외 국가 주권·통일 혹은 영토의 완전성에 위해를 가할 의도로 무력을 사용하거나 무력을 쓰겠다고 위협하는 행위를 포괄한다. 현행 '반역죄'를 기반으로 '반역죄'를 '국가 배반죄(叛国)'로 바꿀 것을 건의한다.
▲2019년 검은 옷의 폭도들로 인해 발생한 대규모의 폭력과 난동은 실질적으로 이미 홍콩 특별구의 전체적인 공공안전에 위해를 가하고 국가 안보를 위협했다. 그러나 '공공조례' 제245장의 '폭동죄'로 이를 처리하는 것은 죄명에 있어서나 처벌에 있어서나 폭력과 난동이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한다는 본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외부 세력이 '홍콩판 색깔 혁명' 과정에서 내부 대리인을 움직여 거짓과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면서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갖도록 선동하는 것은 전형적인 현대적 간첩 행위이다.
새로운 국가보안법은 이 같은 대전제에서 출발해 실질적으로 반정부적 성격의 행동을 단속할 겁니다.
아직 구체적 조항이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만, 대략적 내용을 추측할 수 있는 '건의 사항'들을 중심으로 핵심적인 부분을 추려보면 '온건한 저항' 및 '원거리 저항'을 단속하려는 홍콩 정부의 의지가 잘 드러납니다.
■정부에 반감 품도록 '선동'해도 범죄…'온건한 저항' 단속 여지 넓힌다
▲국가의 근본 제도·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 기관·홍콩 주재 중앙 정부 기관 및 홍콩특별구의 헌법 제도 질서에 대해 반감을 품도록 선동하는 행위를 '선동 의도' 관련 범죄 행위에 포함 시킬 것을 건의한다.
▲현행 '관방기밀조례'에서 금지하는 간첩 행위 이외에 새롭게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할 의도로 (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외부세력'과 결탁해 공중을 대상으로 거짓이나 잘못된 사실을 퍼뜨리는 것과 관련된 일련의 범죄행위를 새롭게 추가하여 외부 세력이 홍콩특별구의 사무에 간섭하는 것에 대응할 것을 건의한다.
▲(간첩 활동과 관련하여) '외부세력'으로 '적'의 개념을 대신하도록 한다
지난해 12월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이 정부에 대한 비판도 '온건한 저항'이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하면서 논란이 됐었는데, 사실상 이때부터 온건한 저항에 대한 단속 강화가 예고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번 초안은 정부에 반감을 품게 하는 것도 선동이라고 규정하고 범죄에 포함된다고 봤습니다.
실제 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할 의도가 있다고 여겨지고 당국이 허위정보가 포함돼있다고 규정한다면, 해외 인권단체나 언론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는 것도 범죄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홍콩 정부는 이와 관련해 문건에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 특히 언론 자유 보장을 충분히 고려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얼마나 보장될지 의문입니다.
■"홍콩 밖에서도 효력"…'원거리 저항' 단속, 어디까지?
▲'국가 배반죄'의 적용 범위가 다음을 포괄하도록 건의한다 : (i)홍콩특별구 내에서 '국가배반죄'를 범한 중국 국민 (ii)중국 국민으로서 홍콩특별구 밖에서 '국가배반죄'를 범한 홍콩거주민(영구 거주민과 비영구 거주민 포함)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하는 범죄 행위에 대해 적합한 역외 효력을 설정하는 것은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한 입법에서 꼭 필요한 부분으로, 국제법의 원칙과 국제관례 및 각 국가 및 지역에서 통용되는 법 적용에도 완전히 부합한다.
▲범죄 행위가 국가 안보에 가하는 실질적인 위험을 면밀히 고려해 그에 상응하면서 국가 안보 수호에 필요한 효력 범위를 건의할 것
홍콩 거주민 자격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해외에서도 법망을 피해갈 수 없을 듯합니다. 어디서 머물든지 간에 국가 주권·통일 혹은 영토의 완전성에 위해를 가하는 '국가 배반죄'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역외 효력'이 어디까지인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홍콩 밖에서도 법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겠다고 '원거리 저항' 단속을 예고 한 만큼,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 넓어진 '국가 기밀' 범위…국가안보사건, 조사시간 늘리고 조기 석방 없앤다?
이 밖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 더 있습니다.
먼저 국가 기밀의 범위를 넓혔습니다.
국가 혹은 홍콩 특별구의 ▲중대한 정책 결정 ▲경제 및 사회 발전 ▲과학기술과 관련된 비밀이 포함됐습니다.
또, 중앙 정부와 홍콩 특별구의 관계에 관한 비밀도 국가 기밀의 범주에 포함됐습니다.
일각에서는 기업이나 학계에서 수행하는 연구에도 문제의 소지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 국가 안보 사건 처리 과정에서의 단점 보완 필요성도 언급했습니다.
국가 안보 사건을 수사할 때는 일반 사건보다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도주한 사람이 홍콩에 돌아와 법 집행 절차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 더 이상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조기 석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도 함께 언급하면서 대중의 의견을 구했습니다.
다만, 존 리 장관은 홍콩판 국가보안법 기자회견에서 피고인이 중국 본토로 송환돼 재판받을 가능성을 묻는 질의에는 "홍콩에서의 활동을 다루는 법이기 때문에 중국 본토에서 재판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보내 재판받도록 하는 내용의 '범죄인 인도조례(송환법)' 추진을 계기로 2019년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촉발됐던 것을 고려한듯합니다.
■20여년만 재추진…국제사회는 '우려'·중국은 '환영'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베일을 벗자마자 국제 사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사실상 친중 진영 인사만 출마할 수 있도록 한 구의원 선거 제도 개편 등으로 홍콩의 정치적 다양성이 실종되고 있다는 진단 속에 친중 '애국자'들의 통치로 대표되는 홍콩의 중국화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반면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평론을 통해 홍콩판 국가보안법의 중요성과 입법화의 시급성을 강조했습니다.
입법이 되지 않는 경우를 가리켜 "중국에 반대하고 홍콩을 어지럽히는 세력들이 계속해서 기회를 노리고 홍콩을 침투 거점으로 삼아 전체 중국 국가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여론을 통해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악마화 하는 데 대응하며 흔들림 없이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홍콩 정부는 약 20년 전에도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2003년 수십만의 홍콩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반대 시위를 벌이자 철회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형식적 절차만 밟고 비교적 신속하게 입법화가 완료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홍콩 정부의 이번 국가보안법 의견 수렴은 2월 28일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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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mj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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