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라틴’을 듣는다
탑 10 아티스트 중 4명이 라틴 음악
히스패닉 인구 급증, 젊은 세대 관심 한몫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지난해 가장 큰 이슈는 ‘K팝의 세계화’였다. 그룹 블랙핑크가 지난해 미국 최대 음악축제인 코첼라의 헤드라이너로 선 것은 K팝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이 축제에서 K팝 못지않게 주목받았던 것이 있다. 라틴팝이다.
지난해 코첼라 첫날 헤드라이너는 라틴계 래퍼인 배드 버니(Bad Bunny)였다. 가수를 꿈꾸는 슈퍼마켓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그는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곡이 DJ 루이안의 눈에 띄면서 진짜 가수가 됐다. 지금은 라틴팝의 선두주자다.
라틴 음악의 세계적인 인기는 여러 통계로 증명된다. 글로벌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에서 2023년 가장 많은 음원이 재생된 아티스트는 테일러 스위프트였지만, 가장 많이 재생된 앨범은 2022년 발매된 배드 버니의 <Un Verano Sin Ti>(네가 없는 여름)였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45억회 이상 스트리밍됐다. 배드 버니는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아티스트 2위이기도 하다.
배드 버니 개인의 인기라고만 보긴 어렵다. 지난해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아티스트 10명 중에는 배드 버니를 비롯해 페소 플루마, 페이드, 카롤 G 등 4명의 라틴 아티스트가 포함됐다. 페소 플루마의 ‘Ella Baila Sola’(그녀는 혼자 춤춘다)는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라틴 음악이기도 하다.
라틴 음악의 인기는 최근 2~3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음악산업 분석업체인 루미네이트는 지난해 초 보고서에서 2020~2022년 미국 내 라틴 음악 앨범의 소비량이 55.29%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K팝의 성장률은 47.67%였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라틴 음악은 왜 최근 인기가 많아졌을까?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는 “라틴 음악은 1970~1990년대 꾸준히 사랑받은 장르였지만, 지금의 인기는 과거 글로리아 에스테판이나 제니퍼 로페즈 등의 뮤지션이 인기를 끈 것과는 다른 양상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 인기 있던 라틴 뮤지션들의 음악은 영미권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 라틴과 영미권 팝을 잘 섞은 것에 가까웠다면, 요즘 인기인 라틴 음악들은 지역색이 훨씬 더 뚜렷하다는 것이다. 정 평론가는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가 늘어나면서 라틴 문화가 낯설지 않게 된 것이 가장 주요한 요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히스패닉 인구는 2022년 6360만명으로 2010년 대비 26% 늘었다. K팝이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으며 한글 가사를 대부분 영어로 대체한 것과 달리, 라틴팝은 영어 대신 스페인어를 주 가사로 쓴다.
전 세계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이 음악을 감상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고, 낯선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젊은 세대가 이런 플랫폼을 주로 이용하는 것도 라틴 음악을 띄운 요인이다. 정 평론가는 “과거엔 어떻게든 서구 문화에 융화되려고 하는 흐름이 있었다면 최근엔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개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며 “예전에 음악을 들으려면 CD든 LP든 사야 했지만 지금은 스트리밍 플랫폼과 유튜브 등으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경로도 많아졌다”고 했다. 루미네이트는 최근 발표한 2023년 연말 결산 보고서에서 “63%의 Z세대와 65%의 밀레니얼 세대는 ‘새로운 문화와 관점을 경험하기 위해 새로운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글로벌 흐름과 달리 국내에서 라틴 음악의 인기는 뚜렷하게 감지되진 않고 있다. 정 평론가는 “사실 배드 버니의 음악은 우리 정서에 잘 맞진 않는다. 배드 버니는 라틴이면서도 힙합이고, 라틴 중에서도 뭄바톤, 레게톤인데 한국 대중은 멜로딕한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다만 K팝에서도 라틴 음악을 차용한 사례는 나오고 있다. 르세라핌의 ‘파이어 인 더 밸리’의 경우 전형적인 라틴팝이다. 정 평론가는 “K팝 자체가 서구와 일본의 대중음악 등을 우리 것으로 체화해서 나왔던 것이라 서구에서 라틴이 유행하면 우리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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