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황의 앵글] ‘전쟁과 평화 선택’ 중국, 국민당 구호로 편들다가 자충수
편집자주
<정진황의 앵글>은 외교 안보 현안에 대한 주요 인물 인터뷰와 소재를 다룹니다. 안보 현안만큼 다양한 논점이 제기되는 분야도 없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보고자 합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의 전방위 압력에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대만은 한국과 함께 식민지 지배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다. 양안 갈등이 맞붙는 대만해협은 우리 수출입 물동량의 절반, 원유 수송의 70%가 오간다. 우리 무역의 6대 교역국이기도 하며, ‘호국산업’이라 부르는 반도체는 세계 제조역량을 우리와 양분하고 있다. 대만은 1996년 민주화 이후 케이블TV의 영향으로 한류문화의 동남아 확산 진원지가 될 정도로 우리와 문화적으로도 밀접하다. 대만은 미국과 일본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 주요 거점이며, 대만해협에서의 군사 긴장은 한반도 정세에 심각한 불안정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동아시아의 화약고’이기도 하다.
대만 유권자들은 1월 13일 총통 선거에서 반중 독립지지파인 라이칭더(賴淸德) 후보와 민주진보당의 3연속 집권을 선택함으로써 전방위 압박을 시도한 중국에 굴욕을 안겼다. 총통 선거 의미와 대만과 양안관계 미래, 한국과의 관계 발전에 대해 대만과 중국 문제 전문가인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다. 강 교수는 “대만 문제는 남의 일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국제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우리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 문제로 대립하는 미국과 중국의 압력에서 협력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국의 대만침공 가능성 희박해
원래 ‘번영이냐 쇠퇴냐’로 선거개입
군사적 모험은 시진핑에 양날의 검
-선거 전 중국은 “전쟁과 평화를 결정하는 선택”이라는 등 강하게 선거 개입을 했습니다. 중국이 정말 군사적 충돌을 선택할까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봅니다. 중국은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접근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대만 양당의 선거 전략을 보면 라이칭더 당선자의 민주진보당은 ‘자유와 민주화 대 독재’를, 허우유이(侯友宜) 후보의 국민당은 ‘전쟁이냐, 평화냐’를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왔습니다. 중국이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 후보까지 3자 구도에서 막판에 친중의 국민당 편을 들다 자충수를 둔 격입니다. 중국은 원래 ‘번영이냐 쇠퇴냐’는 구호로 대만 유권자들을 압박했습니다. 중국은 농산물 등 관세철폐 폐지 등 다양한 형태의 경제제재로 대만을 압박했습니다. 선거 후엔 중국이나 라이 당선자도 톤다운을 하는 모양새입니다.”
-라이칭더 당선 후 상황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중국 국무원 대만 사무판무관실은 '대만 주류의 민의를 대표하지 못했다'는 공식 입장으로 라이청더 당선을 깎아내리는 정도였고, 그 후 강경 반응이 별로 없습니다. 차이잉원 총통은 재선 당시엔 60% 가까이 득표했고, 라이칭더는 40%에 머물렀으니 중국이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라이 당선자도 당선 연설에서 중국과 안정적인 관계를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중국과 각을 세우는 행동을 자제하고 있는 것이죠. 선거 전엔 “중화민국은 대만발전의 재난”이라고 말할 정도로 대만의 중화민국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강경한 독립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당선 후 중화민국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회의석상에 놓아둔 것만 봐도 현상유지 기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차이 총통보다 더 강경한 노선으로 나아가지 않을 걸로 봅니다. 40% 득표에 여소야대 구도라 굉장히 불편한 시작을 하게 됐죠.”
‘중화민국 정체성은 재난’이라던 강경독립파
선거 후엔 “중국과 안정적 관계 가져갈 것”
당선 후 책상에 청천백일기 두고 회의
-대만점령은 늘 중국의 위협 수단입니다. 군사적 충돌 감행은 가능한 옵션 아니겠습니까. 중국을 자극하게 될 일은 뭐가 될까요.
“결심만 한다면 언제든 무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대만 침공은 중국의 마지막 수단이 되겠지요. 군사적 압박과 실행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군사훈련과 봉쇄훈련, 심리전을 통해 ‘양안 갈등은 우리 손해’라는 인식을 대만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게 목표라고 봅니다. 라이 당선자가 국호를 바꾸는 등의 독립정책을 펼치거나 미국의 군사 개입이 강하게 들어올 경우 중국이 자극을 받을 가능성이 높겠죠. 5월 20일 라이칭더의 취임식 연설과 향후 행보를 지켜보겠지요.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고전하듯이 미국 개입이 전제가 되지만 대만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대만통일은 2027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4연임 전리품이 될 수 있지만, 잘못될 경우 시진핑 체제가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죠. 중국이 그런 모험을 감행하겠냐는 의문이 듭니다.”
-패배 직전의 차이 총통이 홍콩 민주화 탄압 사태로 재선에 성공한 경우처럼 중국이 자충수를 두는데요.
“시 주석은 중국의 발전과 안전, 안보를 놓고 볼 때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홍콩 사태 이후 대만이 중국의 일국양제를 못 믿게 된 거죠. 차이 총통 재선 당시 선거 구호가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다’였습니다. 송환법이나 국가보안법으로 홍콩도 활력이 떨어지니까 싱가포르가 제일 수혜를 받게 됐죠. 시 주석의 체면이 깎이게 되니 기조나 전략을 바꾸기 쉽지 않고, 중국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국이 G2로 떠오른 것도 경제력 아닙니까. 중국의 굴기가 조급했다는 게 지금의 시각인데, 다시 주워 담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40% 득표와 여소야대로 불편한 시작
3당체제는 양당정치 염증에 견제심리
제3당 커원저 인기 불구 성공 불투명
-대만 유권자들이 민진당 집권에 손을 들어줬지만, 그렇다고 반중에 쏠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입법의원 선거에서 국민당 52석, 민진당 51석, 민중당 8석, 국민당 공천을 받지 못한 무소속 2석으로 여소야대 구도가 됐습니다. 58석이 과반인데 민중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죠. 입법의원은 국민당이 앞서는 구도였는데 재작년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방심한 측면이 있습니다. 투표용지에 총통, 입법의원, 정당 비례대표 3곳을 찍어야 하는데 유권자의 균형과 견제 심리가 작용한 걸로 보입니다.”
-우리도 제3지대에 대한 기대가 만만치 않은 듯한데 제3정당인 민중당의 성공 여부를 어떻게 보는가요.
“민진당이나 국민당은 대만독립 문제 외에 경제정책 등에서 차별성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 양당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도 있었고, 커원저 후보의 개인적 인기도 많이 작용했습니다. 민진당이나 집권경험을 가진 국민당이 정책에 앞뒤를 재는 것과 달리 커 후보는 파격적이고 가려운 델 긁어주는 맛에 20~40대 청장년층 인기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결론이 없다는 평가 등 정책이나 방향성에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품이다, 중도 없는 중도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성공적인 안착이 만만치 않고, 2년 뒤 지방선거가 존립 관건이 될 걸로 봅니다.”
-과거 대만 입법의원들의 의회 난투극이 우리 언론의 1면 사진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대만 정치도 여전히 극단적입니까.
“요즘은 그렇게까지 안 합니다. 과격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와 선명성을 드러냈는데 대만 유권자들이 염증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된 거죠. 폭거에 저항한다는 투사 이미지가 속된 말로 먹히지 않게 된 것이죠. 민진당이든 국민당이든 극성을 부려서는 표가 자기한테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돼서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군사 경제 등 남의 일 아닌 대만 문제
라이칭더, 각 세워선 대만안정 어려워
윤 대통령도 ‘현상유지’기조 조절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힘에 의한 현상변경 시도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말했고, 중국이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해상 물동량이나 군사전략적으로도 양안의 불안정이 우리 입장에서 좋을 게 없습니다. 그러니 국제주의 원칙에 따라 현상변경 시도에 대한 반대는 표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군사압박을 직접 겨냥하게 되는 ‘힘에 의한’이라는 수식을 붙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일방에 의한 현상변경 시도가 적절한 표현이지 않나 싶습니다. 중국과 대만 모두 겨냥한 말이니까요. 조 바이든 대통령도 선거 후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고, 미국의 기조도 현상유지 아닙니까. 라이 당선자도 대만의 안정적 생존을 위해선 중국과 각을 세워서는 어렵습니다.”
라이칭더 한국과의 관계강화 발언 주목
미중 압력에 반도체공급망 협력공간 많아
경제단체, 기업협력으로 지렛대 만들어야
-라이 당선자 이후 대만과 한국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라이칭더는 당선 이전부터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한미일 공조 강화 흐름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특히 공급망 협력을 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한국과의 인연이 전혀 없는 분인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한국과 대만은 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에서 반도체 제조 역량을 양분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압력에 비춰 볼 때 협력 공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선 후보는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를 다 가져갔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소리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사정상 정부 간 공조가 어렵더라도 경제단체나 기업끼리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지렛대가 생기니까요.”
강준영은 누구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를 했다. 한중사회과학학회 회장과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을 지냈고, 중국과 대만 관련 논문 50여 편을 썼다. 이번 총통선거도 대만 현지에서 지켜봤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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