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SW 대기업 참여 제한 푼다…“‘행정망 먹통’ 재발 방지 위해”
정부가 ‘행정망 먹통’ 사태 재발 방지책으로 공공 정보화 사업의 대기업 참여 제한을 푼다. 경쟁 활성화를 통한 품질 제고를 명분으로 공공 정보화 기획·설계와 700억원 이상 사업에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기업(재벌 계열 시스템통합 회사)도 맘대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선 정부가 행정망 등 공공 정보화 사업 추진 주체로써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운용과 사후관리에 대한 책임까지 대기업을 끌어들여 떠넘기려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1일 이런 내용을 담은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놨다. 정보화전략계획 마련 등 공공 정보화 설계·기획 사업과 700억원 이상 사업에 대해서는 상호출자제한 대기업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공공 정보화 사업 참여 컨소시엄 구성 시 중소기업 참여지분율이 50%를 넘어야 상생협력 평가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게 하던 것을 40% 이상으로 완화하고, 참여 기업 수를 5개 이하로 하고 기업당 최소지분율이 10%를 넘어야 하게 돼 있던 것도 10개 이하, 5% 이상으로 낮춘다.
과기정통부는 “공공부문에 클라우드·인공지능(AI) 같은 최신 기술을 선도적으로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며 “대·중견기업간 경쟁 활성화를 통해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최적의 사업자가 선정될 수 있도록 하고, 품질 제고 노력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형 공공 정보화 사업은 지금도 대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 (대기업 참여 제한을 풀어도) 기업간 상생협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앞서 과기정통부는 2004년 소프트웨어진흥법(제48조)을 근거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를 마련해, 대기업은 중소·중견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과기정통부 장관 승인을 받아 공공 정보화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2013년에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의 참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쪽으로 제도를 강화했다.
과기정통부는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 도입 뒤 중소·중견 소프트웨어 업체 성장과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의 주사업자자 다변화 등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기반 확대에 기여하는 등 순기능이 컸다”며 “그러나 지난해 11월 일어난 행정망 먹통 사태 등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품질 문제가 잇따라 발생해 국민들에게 큰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 국민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해서는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사업자 참여를 확대해 경쟁을 통한 품질 제고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돼왔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정부가 정보화 추진 역량 부족을 시인하며 재벌 대기업을 끌어들여 맡기는 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4대그룹 계열 시스템통합업체 팀장은 익명을 전제로 “정부 스스로 정보화 추진 전략과 계획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하는데, 전략과 기획부터 운용과 사후관리 책임까지 통채로 떠넘기기 위해 대기업 참여 제한을 푸는 꼴”이라며 “정부가 그룹 회장 등 최고위 경영자를 상대하며, 공공 정보화 사업 전략과 계획까지 짜게 하고, 이번 행정망 먹통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해당 대기업에 책임을 미루는 행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생태계가 재벌 계열 시스템통합 회사 중심으로 다시 짜여지며 경쟁력 하락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중견 시스템통합(SI)업체 대표는 “공공 정보화 사업을 수주한 대기업이 기존 중소·중견업체의 해당 분야 경험자를 고연봉으로 쏙쏙 빼가는 사례가 만연할 것”이라며 “중소업체 쪽에서 보면, 애써 쌓아온 기술력과 경험을 대기업에 통채로 빼앗기고, 개발·운용·유지보수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처지로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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