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정치 철새라도 마크롱만 같아라
마크롱, 사회당 떠나 중도정치 개척
당정 파열음 이후 ‘한동훈 현상’ 주목
변화·혁신 없으면 총선 승리 어려워
한국 정치판의 철새는 자연계 철새보다 이동이 더 빠르다. 겨울을 피해 강남에 갔던 제비는 4월에야 돌아오지만 총선을 앞둔 일부 정치인들은 서둘러 새 둥지를 찾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1월 3일 허은아 의원이 앞서 탈당한 이준석 전 대표의 ‘개혁신당’에 합류하기 위해 몸담았던 당에서 떠났다. 18일에는 이언주 전 의원이, 29일에는 권은희 의원이 국민의힘을 등졌다. 이들은 더 나은 정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탈당 이유를 말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와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졌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이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다”고 이재명 대표를 성토했다. 비명계 의원들도 “이재명 체제로는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탈당 이유의 전부일까. 당초 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과 ‘원칙과 상식’ 모임을 꾸리며 동반 탈당을 약속했던 윤영찬 의원의 막판 번복에서 꼭 그렇지만도 않음이 확인됐다. 윤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성남 중원 출마를 노리던 친명계 현근택 변호사가 성희롱 의혹에 휩싸이자 공천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지만 또 다른 친명계 이수진 의원이 서울 서대문갑 출마를 돌연 접고 성남 중원 출마를 선언하면서 모양새만 구겼다. 민주당도 명분보다 이익을 좇는 ‘철새 정치’ ‘메뚜기 정치’가 판치는 비호감 정당으로 낙인 찍혔다.
선거를 앞둔 철새 정치인들의 출현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인제 전 의원의 경우 정치적 정체성도 없이 보수·진보 양대 정당과 군소 정당 등을 오가며 무려 8차례나 당적을 옮겨 불사조라는 조소가 담긴 ‘피닉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경세가 노릇을 하고도 정치를 좋게 바꾸는 역할을 하지 못한 김종인 전 의원과 김한길 전 의원도 정치에 대한 냉소를 키운 나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철새 여부가 아니라 당을 바꿔 무엇을 했느냐일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7년 프랑스 대선 때 지리멸렬한 사회당을 떠나 만든 중도 정당 앙마르슈를 앞세워 66.10%의 압도적인 득표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1977년생으로 당시 37세였던 마크롱은 포퓰리즘을 배격한 제3의 정치 노선을 표방하면서 집권 여당의 혁신 세력과 중도 세력을 규합해 선거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재임 기간에는 스타트업 집중 육성, 노동 유연성 강화, 큰 폭의 법인세 감면 등 기업 친화적인 정책으로 기업의 성장을 도왔고 프랑스 국민들은 그런 마크롱을 2022년 대선에서 또 선택했다. 마크롱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최근에는 34세의 가브리엘 아탈을 역대 최연소 총리로 기용하면서 프랑스에 ‘제2의 마크롱 돌풍’을 예열하고 있다. 이렇듯 정치판 철새라고 다 같은 철새는 아닌 것이다.
4·10 총선에서는 ‘한국판 마크롱 돌풍’이 가능할까. 우리 국민의 정치 혁신 기대는 간절하나 윤석열 대통령의 저조한 지지율에 갇힌 국민의힘이나, ‘이재명 사당화’의 덫에 걸린 민주당이나, 고만고만한 제3 정당들의 면면을 보면 그 기대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요즘 모든 정치 이슈를 빨아들이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예사롭지 않기는 하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으면서 존재감이 커졌고 그 사이 서울경제신문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25~2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여당 지지율을 4%포인트나 반등시키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심지어 민주당은 ‘사퇴 요구’를 이유로 윤 대통령을 경찰에 고발함으로써 ‘박해 받는’ 이미지의 한 위원장 위상을 되레 키웠다. 물론 ‘한동훈 현상’이 한낱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한 위원장의 인기몰이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더 떨어뜨리는 역효과만 낳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한 위원장을 둘러싼 최근의 여론 동향은 정치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이 언제 어떤 형태로든 발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리멸렬한 거대 정당을 박차고 나와 변화·혁신의 비전으로 국민을 마음을 뜨겁게 한 마크롱처럼 공정하고 상식적인 나라에 살 수 있다는 희망만 준다면 누구라도, 심지어 정치 철새라도 총선까지 남은 69일간 ‘돌풍’의 주역으로 떠오를 수 있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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