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10억 있어야 청약 …"신혼특공 아닌 금수저 특공"
'로또 아파트'로 관심 쏠려
신혼부부 특별공급 있지만
월소득·자산보유 제한있어
대출 뺀 현금만 10억 필요
"청약제도 유연한 적용 필요"
"돈 없는 신혼부부는 시세보다 비싼 청약을 하고, 돈 있는 사람들은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을 받는 게 공정한 청약인가요?"
최근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 아파트 모집공고를 확인한 직장인 김 모씨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이 있다길래 관심이 갔는데 분양가를 보니 황당했다. 애초에 '이 자격'으로는 넣을 수 없는 곳인데 왜 '신특'이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메이플자이의 3.3㎡(1평)당 분양가는 6705만원. 전용 59㎡가 17억원대다. 신혼부부 특공은 소득과 자산 제한이 있는데, 소득 기준을 맞춘 사람이 분양가를 마련하려면 현금 수억 원을 가진 '현금 부자'여야 한다. 김씨는 "이게 특공 취지에 맞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분양가상한제(분상제)가 적용돼 시세 대비 10억원가량 저렴하게 공급되는 메이플자이 분양에 청약 실수요자들 관심이 뜨겁다. 그런데 3.3㎡당 분양가 6700만원대 아파트에 소득과 자산 제한이 있는 특공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소득과 자산 제한이 있다 보니 소득이 낮은 현금 부자에게 유리한 청약이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된 것이 특공 제도인데 분상제가 적용되는 강남 청약 시장에서는 '황제 특공'으로 변질되고 있다.
31일 청약홈에 따르면 메이플자이가 오는 5일 특별공급, 6일 일반공급된다. 총 162가구 중 81가구가 특공 물량인데 이 중 신혼부부 특공 29가구, 생애최초 특공 15가구에 자산과 소득 기준이 적용된다.
신혼부부 특공은 전체 물량 중 50%를 도시근로자 가구원 수별 월평균 소득 100%(맞벌이 120%) 이내 가구에 우선공급한다. 그 외 20%는 월평균 소득 140%(맞벌이 160%) 이내 가구에 일반공급되며, 잔여분 30%는 소득은 초과하더라도 자산 기준을 맞춘 가구에 추첨으로 공급된다. 이때 자산 기준은 부동산(건축물 또는 토지) 3억3100만원 이하다.
우선공급에서 낙첨된 사람은 일반공급 20%에서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당첨이 되려면 우선공급 대상이 되는 것이 유리하다. 청약 경쟁률이 높은 인기 단지일수록 소득이 낮은 우선공급 가구가 당첨될 확률이 높다. 즉 신혼부부 특공은 전체 물량 중 70%가 월평균 소득 기준에 맞아야 하며, 그 외 30%는 소득은 초과해도 자산 가격 기준에 맞아야 한다.
문제는 신혼부부 특공 우선공급으로 당첨되면 현금 10억원가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3인 가족 외벌이 가구가 신혼부부 특공 우선공급으로 전용 49㎡에 당첨되려면 월 소득이 650만원 이하여야 한다. 이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최대 대출 가능액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적용(금리 4.5%·만기 30년 기준) 시 5억5000만원이다. 이 평형 분양가는 15억원이므로 최소 9억5000만원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취득세와 옵션 비용을 뺀 가정으로,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신혼부부 특공은 무주택 가구 대상이다. 집을 팔아서도 10억원에 가까운 돈을 마련할 수 없다. 입주 때 팔겠다거나, 입주 때 전세를 놓아 잔금을 마련할 수도 없다. 이 단지는 분상제 대상이어서 실거주 의무 2년이 적용된다. 현금 10억원 이상은 있어야 신혼부부 특공에 도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10억원 넘는 현금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결국 '증여' 등 방법 외에는 답이 없다. '엄빠' 찬스가 필수라는 것이다.
이 아파트는 시세보다 10억원 가까이 저렴하다. 주변 시세는 3.3㎡당 1억~1억2000만원 선인데 메이플자이는 6700만원대에 공급된다. "10억원 있는 사람이 10억원 더 벌게 해주는 청약"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날로 치솟는 분양가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잃고 있는 서민들은 근심이 쌓인다.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하고 분상제가 해제되면서 수도권에서는 시세보다 비싼 청약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 3구를 제외한 서울 지역 3.3㎡당 분양가는 평균 3505만원으로 전년(3442만원)보다 63만원 올랐다. 부동산R114는 "분상제가 유지되는 강남 3구를 제외하고 서울 지역은 전체적으로 분양가가 시세를 앞지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공급되는 분상제 단지 청약은 분양가 자체가 높다 보니 '현금'이 자격 조건이 돼 버렸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분상제, 특공, 실거주 의무 등 온갖 규제가 중첩된 가운데 강남에서 로또 청약이 벌어지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서 "거주지, 수요자, 분양가에 따라 청약 제도를 취지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분양가가 날로 오르고 있어 서민들의 분양가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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