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 연기금 실종···개미만 활개치는 기형적 구조 개선 시급
<상> 각자도생 자본시장
수익률 관리에 치우친 국민연금
작년 운용자산 14%만 국내투자
외인, 공매도 금지 등에 비중 줄여
증시보다 낮은 공모펀드 수익에
개인은 ETF 등 직접투자 '올인'
재형저축 등 적립식 상품 키워야 상>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에요. 수익률에 집착하는 국민연금은 해외로 나가고 있고 외국인들은 한국의 정책 당국에 실망해 비중을 축소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지정학 리스크가 불거진 판인데···. 시계를 10년·20년 더 장기로 잡으면 자본시장은 더 퇴보했어요. 개미들은 투명화된 정보, 자산운용 전문가에 대한 낮은 신뢰 등이 겹치면서 직접투자에 올인하고 있어요. 증시가 신년 들어 힘을 못쓰는 것은 이런 게 누적된 결과입니다.”
금융계의 한 고위 인사는 최근 한국 증시의 ‘나 홀로 부진’에 대한 진단을 부탁하자 이렇게 쓴소리를 날렸다.
실제 올 들어 외국인과 기관의 한국 증시 외면은 심각하다. 당장 팬데믹 시절(2020년 3~5월, 코스피 시장에서 5조 원 순매수) 한국 증시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국민연금만 해도 올 들어 7200억 원어치의 주식을 처분했다. 중기자산배분계획을 보면 국민연금 전체 자산에서 국내 증시 투자 비중은 지난해 15.9%에서 올해 15.4%, 내년에는 15%로 줄어든다. 축소된 주식 비중마저도 다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게 더 문제다. 국민연금 투자에 정통한 한 인사는 “실제로는 지난해 전체 운용 자금 가운데 14.1%(11월 기준)만 국내 주식에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현 시점을 국내 주식의 저가 매수 적기로 본다면 적어도 전체 자금의 1%가량은 당장 투자할 여력이 있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국민연금의 지난해 11월 말 해외 주식 투자 금액은 총 303조 3000억 원으로 전체 투자금의 30.4%에 달했다. 국민연금은 올해 말 이를 337조 9000억 원(33.0%)까지 늘릴 방침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계의 한 인사는 “2022년 원·달러 환율 급등기에도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에 따른 달러 환전 수요로 원화 가치가 더 폭락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며 “지금과 같은 증시 급락기에 한국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연기금이 외면하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자산운용 업계의 한 임원은 “국민연금으로서는 수익률을 의식해야 하는 만큼 (증시 하락을 빌미로) 연기금의 팔을 비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한국 증시가 저평가 국면에 진입하고 있어 조만간 다른 매매 패턴이 나타날 것”이라고 짚었다.
외국인투자가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의 최고경영자는 “무차입 공매도 금지에서 더 나가 공매도 전면 금지가 이뤄지면서 롱쇼트 전략을 쓸 수 없게 된 장기 해외 투자자들이 일부 짐을 싼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외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간 수수료 장사로 손쉽게 수익을 거뒀던 증권·자산운용 업계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 하락도 자본시장을 더 허약 체질로 만들고 있다. 2020년 112조 원에 달했던 공모펀드 설정액은 주가지수도 못 따라가는 수익률 탓에 지난해 3월 100조 원 선을 내줬다. 반면 개인이 직접 사고팔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규모는 120조 원까지 커졌다. 실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가장 인기였던 리서치 부서는 이제 기피 부서가 됐다. 간접투자 시장이 망가진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믿을 만한 기관 전문가들이 실종되면서 펀드 시장뿐 아니라 주식 시장도 개인 소액 투자자들의 놀이터로 전락하면서 변동성만 키우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7년 기관 21.01%, 30.84%에 달했던 코스피 시장의 기관과 외국인 거래 대금 비중은 지난해 18.08%, 25.63%까지 떨어졌다. 개인 비중만 46.68%에서 52.24%로 수직 상승했다. 외국인 비중은 올 들어 더 떨어져 24.32%까지 내려갔다.
한 증권사 임원은 “근로자 재형저축 등 월 적립식 투자 상품 시장이 커져야 증시 기반이 탄탄해진다”며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근로자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한 재형저축 부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한도 상향 등의 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증권가에서는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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