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채찍에 납작 엎드린 식품기업들, 선거후 발톱 드러낼 것”…‘슈링크플레이션’ 방지법 논란 [김혜진의 알쓸경법]

김혜진 매경닷컴 기자(heyjiny@mk.co.kr) 2024. 1. 3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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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는 경제 법안
소비자 기만 ‘슈링크플레이션’
국회, 방지법 8개 계류 중
전문가 “비직접적인 간섭해야”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시내 한 마트에 식품류가 진열돼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남 모씨는 “최근에 친구랑 둘이 삼겹살집에 갔다가 2인분을 시켰다가 양이 너무 작아서 놀랐다. 분명 1인분에 200g이었던 거 같은데 150g으로 줄었다. 이제 3인분은 기본으로 먹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 20대 남성 김씨는 “떠먹는 요구르트 중에 초콜릿 과자를 넣어 먹는 제품을 좋아해서 자주 사먹곤 했다. 근데 갑자기 양이 줄어든 것 같아서 확인해 봤더니 중량이 143g에서 138g으로 줄어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물가 시대에서 일부 식당이나 기업들의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의 눈에 띄지 않게 가격을 올리는 대신 제품의 용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린 ‘꼼수’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가격종합포털 참가격에서 가공식품 209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11월까지 최근 1년 동안 19개 상품이 용량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원F&B의 ‘양반 들기름김’, 해태 ‘고향만두’ 등에서 용량이 최대 20% 줄었다. 풀무원의 핫도그 4종은 한 봉지에 5개에서 4개로 개수가 줄었고, CJ제일제당의 ‘숯불향 바베큐바’는 280g에서 230g으로 중량을 줄였다.

슈링크플레이션 사례 [사진 출처 = 황희 의원실]
국회, 여야 막론 관련 법안 8개 계류 중
‘소비자 기만’이라는 비판이 잇따르자 정치권에서는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정부는 실태조사를 벌였고, 규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국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슈링크플레이션 방지법이 나오고 있다.

31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사업자가 제품에 대한 용량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소비자가 가격 인상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는 내용의 법안은 총 8개가 발의돼 있다.

관련 법안을 가장 먼저 발의한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소비자기본법 △표시·광고의 공정화 △식품 등의 표시·광고 △물가안정 등 4개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황 의원이 발의한 4법은 한국소비자원이 실태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공표하고, 공정거래위원회 고시로 변경 전후 사항 표시, 식품, 물품 및 원재료 내용량 변경시 내역 표시 및 공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당 민형배 의원도 상품 소재·질량 변경에도 소비자가 알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공정위가 사업자에게 그 정보를 고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에서도 서정숙·김승수·박대출 의원이 각각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품의 용량이나 재료의 함량 등을 변경한 경우 제품의 포장지에 이를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용량 등 상품의 중요사항을 변경하는 것을 ‘사업자의 부당행위’로 지정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사업자의 부당한 소비자거래행위 지정 고시’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 가결이 선포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시장 믿고 인내심 가지면 가격 조정될 것”
다만 전문가 측에서는 이런 정치권의 대응이 과잉 규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을 방지하는 게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법으로 규제를 할 게 아니라 원자재 가격을 안정화해 가격이 다운사이징되게 한 다음에 경쟁을 촉진하는 비직접적인 간섭을 해야 한다”며 “학습효과라고 해서 정부가 못 올리게 할 것을 알기 때문에 총선이 끝나고 (기업들은) 기회가 되면 15% 인상할 것을 30%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기업과 식당은 영리를 추구하는데, 원자재가 올랐을 때 소매가를 올릴 수 없으면 용량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며 “경쟁 메커니즘을 통해 소비자가 용량을 줄이는 업체를 외면하면 다 조정이 된다. 자본주의, 시장주의 사회인만큼 시장을 믿고 인내심을 가지고 있으면 (가격이 조정)된다”고 덧붙였다.

황희 “통과 안되더라도 분위기 잡히면 효과있어”
황 의원은 과잉 규제라는 지적에 대해 이날 통화에서 “과도한 개입이라고 하면 캠페인이나 계도를 통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며 “지금까지 안하고 있었으니까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이 겪고 있어서 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도 캠페인이나 어쨌든 사회적으로 좀 화두가 돼서 기업들이 표시를 잘하고, 꼼수를 부리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만 잡혀도 효과는 있는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25일 18개 주요 식품 제조사와 상품 용량 등 정보 제공을 위한 자율 협약을 체결했다. 제조상품의 용량이 축소될 경우 이를 소비자원에 알리고, 온라인 홈페이지나 상품 판매 페이지에 1개월 이상 게시하기로 했다.

협약 대상 업체는 남양유업, 농심, 대상, 동서식품, 동원F&B, 롯데웰푸드, 매일유업, 샘표식품, 서울우유협동조합, CJ제일제당, hy, 오뚜기, 오리온, 오비맥주, 파리바게뜨, 풀무원식품, 해태제과식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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