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전진당, 전진 가로막히나…“왕실모독죄 개정 중단하라”
논란이 많은 태국의 왕실모독죄를 개정하려던 전진당(MFP)의 시도가 법원에서 가로막혔다. 법원은 왕실모독죄 개정 공약에 체제 전복의 의도가 있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날 판결을 계기로 전진당 해산을 요구하는 청원이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3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태국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후 전진당과 피타 림짜른랏 대표 고문의 왕실모독죄(형법 제112조) 위반 혐의에 대해 “전진당은 이 조항을 개정하려고 하다 헌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즉시 해당 계획을 중단하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피타 당시 대표가 이끄는 전진당은 왕실모독죄 개정, 징병제 폐지 등 진보적인 공약을 내세워 도시·청년층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제1당에 등극했다. 이후 한 보수 성향 변호사가 전진당의 왕실모독죄 개정 공약이 헌법 제49조를 위반한다며 전진당과 피타 고문을 상대로 헌재에 청원을 제기했다. 태국 헌법 제49조는 국민이 군주제를 전복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번 재판의 관건은 전진당에 군주제 전복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전복 의도가 인정될 경우 당 해산 결정은 물론 당 간부들은 10년 동안 출마 금지에 처해질 수 있다. 전진당의 전신인 퓨처포워드당(FFP)이 정당법 위반 혐의로 해산당한 전례가 있다.
그동안 전진당은 태국의 입헌군주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왕실모독죄 개정을 논의하는 것이 입헌군주제 전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취지다. 타나톤 쯩룽르앙낏 전 퓨처포워드당 대표는 이날 판결을 앞두고 “법률은 신이 보낸 문서가 아니다. 인간의 손으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수정할 수 있다”며 왕실모독죄 역시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의원이 법을 개정할 수 없다면 나라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태국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헌재는 전진당의 공약이 “국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민주 정부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시도였으므로 헌법을 위반했다”고 해석했다.
이로써 전진당은 발목을 붙잡고 있던 족쇄를 끝내 떨치지 못했다. 이날 헌재가 당 해산을 명령하지는 않아 당장의 최악은 면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헌재 판단을 근거로 또 다른 소송에 처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당법 제92조에 따르면 헌법 제49조를 위반한 것으로 판결된 정당에 대해선 선거관리위원회가 헌재에 당 해산과 당 간부들의 출마 금지를 청원할 수 있다. 판결에 앞서 방콕포스트도 이 조항을 근거로 “전진당을 비판하는 이들이 당 해산을 요구하는 청원을 추가로 제기할 수 있다. 다만 해산까지는 장기간이 걸릴 것”이란 전문가 견해를 전했다.
태국의 왕실모독죄는 국가적 존경 대상인 국왕과 왕비 등 왕족의 명예를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위반하면 최대 징역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 조항은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돼 진보 세력을 향한 입막음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태국인권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약 260명이 왕실모독죄로 기소됐다. 이번 전진당 판결을 앞두고도 학생운동가 등에 대해 왕실모독 혐의로 유죄 판결이 잇따라 내려져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차이타왓 뚤라톤 전진당 현 대표는 판결 직후 “군주제를 전복할 의도가 없었다”며 “이번 판결이 전진당과 민주주의, 태국인의 자유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 | 김서영 순회특파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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