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재발열증후군, 숨길 수밖에 없는데 치료 길도 막혀[극복해요! 희귀질환]

헬스경향 이원국 기자 2024. 1. 3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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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인 관심이 부족하다 보니 희귀질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제대로 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희귀질환자들의 고통분담을 위해 ‘희귀난치성질환자 산정특례제도’를 발표했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지원이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에 본지는 희귀질환자들의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극복해요! 희귀질환’이라는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윤리 중 하나는 고통받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캐나다 캘거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인 아서 플랭크가 집필한 ‘아픈 몸을 살다’의 한 문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크고 작은 질병을 만난다. 또 질병을 앓는 가족이나 지인을 돌보는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하지만 왜 우리는 그 자리에 서기까지 ‘외면’하는 것일까.

“아이가 갑갑해하죠. 남들처럼 수학여행, 수련회를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보호자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가득했다. 분명 전화 인터뷰를 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이는 생후 10개월이 됐을 때 유전재발열증후군을 진단받았다. 유전재발열증후군환자는 현재 매일 1회 자가주사를 통해 본인의 증상을 조절해야 한다.

“완치가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유전재발열증후군은 희귀자가염증성질환으로 인체 면역체계가 유전자 이상으로 인터루킨-1베타(IL-1β)를 지나치게 생성해 뇌, 눈, 관절 등 영구적 손상을 유발한다.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유전재발열증후군은 주로 출생 직후 또는 유아기에 발현된다. 문제는 치료시기를 놓치면 근골격계 이상, 아밀로이드증, 청각상실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한다는 것. 진단도 쉽지 않다. 영유아기에는 열이 자주 나다 보니 해열제를 먹이고 다른 질환을 의심하지 못한 채 넘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직까지 완치제가 개발되지 않아 증상조절이 치료목표다.

유형으로는 가족성지중해열과 크리오피린주기적증후군(이하 CAPS), 종양괴사인자 수용체 관련 주기적 증후군(이하 TRAPS), 고면역글로불린D증후군, 메발론산키나아제결핍증(이하 HIDS/MKD) 등 다양한 아형이 있다. 이 중 우리나라에서는 CAPS환자가 가장 많지만 이조차도 20~50여명뿐으로 정확한 집계는 어렵다.

■CAPS, 질환과 평생 사투 벌어야

환자들은 질병과 함께 평생 살아가야 한다. 질병에게 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안간힘이 무색하게 현실은 막막하기 그지없다.

CAPS는 완치가 어려운 질환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인터루킨-1베타 물질의 작용 경로를 차단하는 약물이다.

인터루킨-1베타 차단 치료제 이외에 증상 완화를 위해 단기 글루코코르티코이드(Short-term glucocorticoids) 또는 비스테로이드 항염증제(NSAIDs) 등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차단 치료제 외에는 별 효과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인터루킨-1베타 차단 치료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키너렛(아나킨라)’만 급여를 적용받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희귀필수의약품 센터를 통해 공급받아야 하고 CAPS 중 가장 중증도가 높은 만성영아신경피부관절증후군(CINCA)환자들에 한해 처방된다.

또 해당 약물은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지 않았으며 코로나19 당시 수급불안정 문제로 외래가 연기되는 등 크나큰 불편감을 겪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일 1회 자가 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잦은 주사로 인한 피부손상 등의 문제가 동반된다. 이밖에도 냉장 보관이 필요하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환자 체중에 맞게 용량을 조정해야 하는 과정이 부모와 아이에게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감염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정대철 교수(대한소아임상면역학회장)는 “CAPS는 소아환자가 많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다른 치료제를 찾을 수밖에 없다”며 “또 키너렛은 체중에 따라 용량을 증대시켜야 하고 오랫동안 접종하는 만큼 약물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으며 백신접종에도 유의사항이 많다”고 강조했다.

■유일한 치료제, 비급여로 치료 길 막혀

“6살 때쯤 제가 아프단 사실을 알았어요…제가 아프다는 사실을 학교에는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간혹 고열로 입원을 하다 보니 모르겠어요. 아파야 하는 이유도 매일 주사 맞는 것도 지쳐요.”

올해 13살이 되는 CAPS 환아의 말에는 ‘답답함’이 담겨 있었다. 간혹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이 본인을 덮쳐올 때는 알 수 없는 자괴감에 휩싸인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고통은 이 환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국내 CAPS 치료제로 허가된 유일한 치료제가 있다. 바로 ‘일라리스(카나키누맙)’이다. 다만 아직 보험 급여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 즉 환자들은 임시방편으로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대체 약제인 키너렛를 공급받고 있는 것.

일라리스는 국제 가이드라인에서 CAPS 치료에 권고하는 IL-1 억제제이자 국내 및 FDA5, EMA7 모두에서 유일하게 허가된 치료제이지만 아직까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환자의 실질적인 사용은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일라리스 150mg를 투여한 CAPS 환자를 대상으로 8주 간격으로 피하주사한 임상결과를 보면 투여자 중 97%(35명 중 34명)가 오픈라벨 기간 동안 1회 투여로 8주 이내 완전관해를 달성했다. 위약 대조기간 중에서도 해당 약을 8주 간격으로 투여한 환자군 전원(15명)이 6개월 이상 완전관해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라리스는 환자와 보호자의 삶의 질도 유의미하게 개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라리스로 1회 이상 치료받은 CAPS 성인 및 소아환자 6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프랑스 코호트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라리스 장기치료는 CAPS 환자의 신체적·정서적·사회적 삶에 유의미한 개선을 가져다줬다.

정대철 교수는 “미국, 일본, 유럽 등의 국가에서도 일라리스가 급여 적용돼 유전재발열증후군 치료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치료접근성이 확대됐으면 좋겠다”며 “환자와 의료진 입장에서는 많은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들의 생존권 확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헬스경향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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