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우칼럼] 트럼프 상호주의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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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뒷골목에서 '일진'을 만났다.
하지만 '트럼프의 상호주의'는 한마디로 '일진과의 거래' 같은 것이다.
미국 주도로 1995년 만들어진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칙도 상호주의에 국가 간 차별 금지 조항을 추가한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집권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트럼프 상호주의'의 압박이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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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무역법' 불공정성 논란
미국 역사와 가치 무시하고
힘 내세워 굴복 요구하는 것
학교 뒷골목에서 '일진'을 만났다. 다짜고짜 가방에 있는 것 다 꺼내라고 한다. 가방을 털었더니 빵 2개와 우유 1개가 나왔다. 그는 빵 1개와 우유 2개를 꺼내더니 서로 바꾸자고 한다. 별로 바꿀 생각은 없었지만 무서운 마음에 바꿨다. 다음 날 그를 또 만났다. 그는 "어제 우유 2개를 주고 하나를 받았으니 불공정하다"며 우유 하나를 내놓으라고 한다. "우유 대신 빵을 하나 더 줬잖아"라고 했더니, 일진은 "빵은 모르겠고 어쨌든 나는 우유 두 개 주고 하나를 받았으니 오늘 우유 하나를 더 받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거절하면 한 대 내려칠 태세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우유 하나를 꺼내 준다. 결국 빵 2개, 우유 2개를 빵 1개, 우유 2개와 바꾼 셈이다. 이게 공정한 거래일까.
미국 대선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외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트럼프 상호무역법'을 들고나왔다. 내용은 단순하다. 상대국이 10% 관세를 물리면 미국도 10% 관세를 물리는 것.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이다. 트럼프는 상호주의(Reciprocity)에 입각한 공정한 정책이라고 했다. 그는 주로 중국을 타깃으로 언급했지만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평균 관세는 12.5%, 미국은 3.5%다. 법안이 시행되면 우리가 관세를 대폭 낮추거나 미국이 올려야 한다. 미국 선거판에서 트럼프가 상호무역법을 언급할 때마다 지지자들은 환호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상호주의'는 한마디로 '일진과의 거래' 같은 것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상호주의가 갖는 역사성이다. 미국의 무역정책은 18~19세기 '무조건 수출이 좋다'는 식의 중상주의와 20세기 초 '관세로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는 보호주의를 거쳤다. 하지만 중상주의는 낡은 이데올로기로 판명 났고, 보호주의는 국가 간 교역을 위축시켜 대공황을 촉발했다. 이런 역사적 교훈에 따라 1934년 미국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무역협정법'을 만들어 무역정책의 기본으로 삼았다. 이때 상호주의는 국가 간 협상을 통해 서로 무역 장벽을 낮추고 교역을 확대해 공동 이익을 추구한다는 의미였다. 미국은 상호주의에 입각해 수많은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미국 주도로 1995년 만들어진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칙도 상호주의에 국가 간 차별 금지 조항을 추가한 것이다. 미국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무역질서를 활용해 세계 시장을 넓히면서 발전했고 글로벌 경제 패권까지 장악했다.
상호주의는 포괄성도 갖는다. 국가 간 무역협상은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일종의 거래지만 협상 대상은 무척 다양하다. 관세뿐만 아니라 수입량을 제한하는 쿼터, 법률·의료 등 서비스 및 자본시장 개방, 자국 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 무형의 가치인 지식재산권 등 수십, 수백 가지 내용을 다룬다. 국가마다 보호하고자 하는 영역도 제각각이다. 미국은 그동안 개발도상국과 협상할 때 개도국에 비교적 높은 관세를 허용하면서 지식재산권 보호, 자본·서비스 시장 개방 등 각종 제도 개혁을 요구했다. 관세만 놓고 보면 미국이 불리한 것 같지만 전체적인 협상의 득실을 따져보면 미국에 유리한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을 모를 리 없는 트럼프가 관세만 꼭 집어 상호주의를 내세운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척'하는 행태다.
'트럼프 상호주의'는 이름만 같을 뿐 미국이 같은 이름으로 추구해온 상호주의에 내포된 역사성과 포괄성을 모두 부정한다. 특히 지난 100여 년간 미국이 맺어온 다른 나라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집권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트럼프 상호주의'의 압박이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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