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사실관계 인정한 법원··· “선거 개입 동기 갖고 고발장 전달”

김혜리 기자 2024. 1. 3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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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가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1.31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 검찰이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통해 범민주당 인사들의 고발장을 대리 접수하려 한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일명 ‘고발사주’ 의혹 사건의 사실관계가 대체로 인정된 셈이다. 다만 문제의 고발장이 수사기관에 접수된 건 총선 이후여서 손준성 검사(대구고검 차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봤다.

‘고발사주’ 있었나, 없었나... 법원 판단은?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옥곤)는 손 검사가 2020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예비후보)에게 텔레그램 메신저로 범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과 관련 자료를 보냈다고 봤다. 고발사주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던 사실관계를 확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우선 손 검사가 고발장이 담긴 텔레그램 메시지를 직접 전송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의 제보자 조성은씨가 김 의원으로부터 전달받은 메시지에 ‘손준성 보냄’이라고 표시된 점을 들면서 “해당 표시를 누르면 피고인의 휴대전화 연락처로 연결되는 것이 확인된다. 텔레그램 기능상 피고인이 해당 메시지를 최초 생성한 후 다른 사람에게 전송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손 검사 측이 제기한 ‘제보 메시지 반송 가능성’이나 ‘제3자 개입 가능성’도 일축했다. 손 검사가 고발장 제보를 거절하기 위해 메시지를 반송하려 했다면 굳이 메시지에 첨부된 자료를 전부 저장한 뒤 다시 보내는 번거로운 방법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고발장 내용이나 고발장 접수 절차와 관련해 신속하고 기민한 소통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점을 고려해 “손 검사와 김 의원 사이에 제3자가 존재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설령 있었다고 해도 중간에 끼어있을 뿐인 전달책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고발장 작성·검토에 관여한 사실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손 검사가 당시 근무하고 있던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수정관실) 소속 검사들이 검색한 판결문이나 피고발인의 인적사항 등이 고발장에 쓰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대검 수정관실 연구관이었던 임홍석 검사가 2020년 4월8일 조회한 판결문 내용이 고발장에 반영됐다면서 “임 검사가 고발장에 관련 내용을 기재했거나, 최소한 고발장에 기재돼 있는 판결문 관련 내용을 검토하거나 수정하기 위해 검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또 “임 검사가 2020년 4월3일 오후 1시 42분 1초에 법조인대관에 접속했고, 8초 뒤인 오후 1시 42분 9초에 최강욱이 검색됐다. 24초에는 황희석도 검색됐다”며 “임 검사가 접속한 1초부터 24초까지 다른 검찰청 구성원이 법조인대관이 새로 접속한 이력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최강욱 전 의원의 고발장엔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 아니라 법조인대관에만 기재된 실제 생년월일이 적혔다.

재판부는 손 검사가 ‘고발사주’를 할 동기도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고발장은 그 무렵 검찰 또는 그 구성원을 공격하던 여권 인사를 피고발인으로 삼고 있었고, 고발이유에는 검찰 구성원 등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피고인에겐 고발이 이뤄지도록 할 동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주요 사실관계 인정했지만 무죄... “실제 선거 영향 없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손 검사의 공직선거법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고발장 작성·전달만으로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나 위험이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고발장이 총선 전까지 수사기관에 접수되지 않았고, 관련 언론보도도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의 기수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미수범이나 예비, 음모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손 검사의 나머지 혐의는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손 검사가 김 의원에게 ‘제보자 X’ 지모씨의 실명 판결문을 전송해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누설했다고 봤다. 개인정보보호법 및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다만 최 전 의원이 피고발인으로 기재된 2차 고발장의 내용은 공무상 비밀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법원은 문제의 고발장이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작성됐다고 판단했고, 손 검사가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사실도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현직 검사가 자신의 직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특정 정당의 이익을 도모하고, 검찰에 비판적인 상대를 압박했다는 점이 인정된 것”이라며 “공수처는 ‘윗선’으로 의심을 받았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 당시 검찰 고위 간부들의 연루 의혹에 대해 재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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