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오늘 잘려요”…미 빅테크 구조조정에 ‘해고 브이로그’ 유행

정인선 기자 2024. 1. 3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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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늘면서 생애 첫 해고를 맞닥뜨린 엠제트(MZ) 세대가 화상 회의 등으로 갑작스레 해고를 통보받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틱톡 화면 갈무리

“저는 곧 해고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될 거고요.”

미국 정보보안 기업 클라우드플레어에서 회계 업무를 하던 브리트니 피에치는 화상 회의를 통해 해고를 통보받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지난 10일(현지시각)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 계정에 올렸다. 이 영상엔 피에치가 이전까지 만나 본 적 없는 회사 쪽 인사 2명이 등장해, 피에치가 회사의 성과 기대치를 만족하지 못했다며 해고를 통보한다. 피에치는 자신이 팀장 등 관리자로부터 받았던 긍정적인 업무 평가를 예로 들며, 자신이 왜 해고 대상이 된 것인지 따져 묻지만 회사 측은 구체적인 해고 사유를 끝내 밝히지 않는다.

두 편으로 나뉘어 올라온 이 영상은 31일 오후 현재까지 300만회 가까이 재생됐다. 영상을 본 틱톡 이용자들은 “나도 7년 동안 열정을 다해 일한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말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6개월 전부터 곧 승진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던 회사에서 얼마 전 해고당했다”, “2022년 11월 나와 내 남편 모두 새벽 6시에 온 이메일 한 통으로 메타(옛 페이스북)에서 해고됐다” 등 제각기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 “더 좋은 일이 있을 것”, “이런 상황에 이렇게 침착하다니 대단하다”등 피에치에 대한 응원도 잇따랐다.

새해 들어 유튜브, 아마존, 이베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갑작스레 일자리를 잃게 된 엠제트(MZ) 세대 노동자들이 자신이 해고 당하는 장면을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일이 늘고 있다. 31일 틱톡에 ‘해고’(layoff), ‘2024 정리해고’(2024 layoffs) 등 키워드를 검색하면 미국의 빅테크 기업에 몸담았던 것으로 보이는 이용자들이 해고를 통보받는 순간을 촬영한 영상이 여럿 검색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해고 통보 또한 10분 남짓의 짧은 화상 회의나 간단한 이메일 한 통으로 갑작스레 이뤄지는 경우가 늘면서, 해고 사실을 직감한 이들이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는 생각에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를 켠 채 회의에 입장하고, 그 영상을 올리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세대가 처음 겪는 해고에 느끼는 고립감을 에스엔에스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미국의 헤드헌터 겸 커리어 코치 파라 샤르히는 최근 비비시(BBC)에 “틱톡과 같은 플랫폼에 해고 경험을 공개하는 것은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디지털 공간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성이 넘치던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고용을 무분별하게 늘렸다가 경기가 나빠지자 해고를 남발하는 기업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샤르히는 “기업은 해고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려 할 수 있지만, 대량 해고의 경우라면 리더십 실패나 기술 환경의 변화가 원인일 수 있다”면서 “이들 영상은 기업의 실패를 폭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 들어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늘면서 생애 첫 해고를 맞닥뜨린 엠제트(MZ) 세대가 화상 회의 등으로 갑작스레 해고를 통보받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틱톡 화면 갈무리

매슈 프린스 클라우드플레어 최고경영자는 피에치의 영상이 화제가 되자 부당한 해고가 아니었음을 항변하는 글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그는 “(NBA 선수) 크리스 폴이 피닉스 선스에는 잘 맞지 않았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한 농구 선수였듯 (팀 내에서) 성공 가능성이 낮은 이들을 최대한 빨리 떠나도록 해 그들이 스스로에게 적합한 자리를 찾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우리가 더 친절하고 인간적이었어야 했다”고 해고 과정이 부적절했다는 것에 대해 사과했다.

한편, 해고 영상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뜻밖의 기회로 이어지기도 한다. 뉴욕타임스의 30일 보도를 보면 미국 유타주의 한 기업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해 온 시몬 밀러는 해고 통보를 받은 날의 재택근무 풍경을 찍은 영상을 에스엔에스에 올린 뒤 수십 건의 일자리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클라우드플레어에서 해고당한 피에치도 일자리 제안을 비롯한 링크트인(비즈니스 전문 SNS 플랫폼) 메시지 1만여개를 받았다고 밝혔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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