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광동, 민간학살 몰래 재조사…결론 뒤집으려 직권남용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전체위원회에서 진실규명을 의결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 김광동 위원장이 두 달간 신청인들에게 통지를 미루다 재조사를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위원회에서 공식 의결이 난 사항을 위원장이 임의로 재조사를 시킨 일은 전례가 없는데다 법 위반 소지가 있어 “명백한 직권남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3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진실화해위 조사1국의 조사관 2명은 지난 24~25일 각각 대전과 함평에서 ‘전남 함평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희생자 ㄱ씨 사망 경위를 2년 만에 다시 조사했다. 대전에서 ㄱ씨 아들(77)과 부인(99)을 만났고, ㄱ씨가 살았던 함평의 면 지역 마을회관 등을 돌며 탐문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ㄱ씨의 아들 ㄴ씨는 3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조사관 2명의 방문을 받아, 어머니와 함께 1시간 가까이 조사에 응했다”며 “조사관들은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냐’에 초점을 맞춰 물었다”고 말했다. ㄴ씨는 “어머니와 함께 2년여 전에도 조사관 1명의 방문을 받은 적 있다”고 덧붙였다.
함평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희생자 ㄱ씨의 유족은 지난해 11월28일 열린 제67차 전체위원회에서 여야 추천 위원들의 의결로 다른 희생자 12명과 함께 진실규명을 받은 바 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전체위가 끝난 직후 낸 보도자료에서 “13명에 대해 제적등본, 족보, 함평군 한국전쟁 기간 민간인 희생자 피해연구보고서, 1기 진실화해위 기록,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분석하여 희생자로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진실화해위 기본법 28조는 “위원회는 진실규명 결정이 난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유를 명시하여 신청인과 조사대상자·참고인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진실화해위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위원회에서 의결된 사항은 재조사할 수 없다. 위원회 의결을 무효화시키려는 저의가 보인다”며 “지체없이 통지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고 재조사까지 시켰다는 점에서 명백한 직권남용”이라고 말했다.
김광동 위원장은 “ㄱ씨가 죽창부대에 의해 살해됐다는 보고서 내용을 주시하고, 인민군이나 지방좌익 또는 빨치산(적대세력)에 의해 살해된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함평 사건을 원래 조사한 과가 아닌 다른 과의 조사관에게 출장 재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재조사가 비공식적으로 소수만 아는 라인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에 진실규명된 희생자 유족들의 신청서 작성에 관여했던 사단법인 함평사건유족회의 정근욱 회장은 한겨레에 “ㄱ씨의 부인과 딸이 ‘ㄱ씨는 경찰 죽창 부대에 희생됐다’고 증언했는데, ㄱ씨 사위가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죽창부대라고만 하는 바람에 내가 신청서에 적대세력 희생자라고 썼다. 그런데 조사관이 ‘당시 죽창 끝에 쇠를 달고 다닌 경찰 쇠죽창 부대(대창부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바로잡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다른 조사관들이 실시한 재조사 결과에서도 애초 조사에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의 결론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 죽창은 주로 지방 좌익들이나 빨치산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도 죽창을 살해무기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실제 1기 진실화해위의 함평 사건 조사보고서를 보면 경찰 죽창에 의해 살해된 민간인 사례가 나온다.
앞서 김광동 위원장은 지난해 6월9일 서울 영락교회 강연에서도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 유가족들이 우리 위원회에 와서 군경이 죽였다고 신고를 한다. 인민군이나 빨치산에 의해 죽었다고 하면 보상을 못 받기 때문”이라고 말해 유족들의 비난을 산 바 있다.
ㄱ씨가 포함된 ‘전남 함평 군경에 의한 희생사건’에서는 1949년 11월부터 한국전쟁 후인 1951년 3월까지 전남 함평군 일대 주민들이 부역 혐의 등으로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 함평에서는 당시 국군 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 군인들이 월야면·해보면 등 인근 지역을 장악하고 빨치산 토벌활동을 벌이면서 1000여명 넘는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1기 진실화해위에서만 9차례, 2기에서는 3차례 진실규명이 이뤄졌다.
한겨레는 함평사건 재조사에 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김광동 위원장과 이옥남 상임위원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두 사람 모두 접촉을 피했다. 함평 사건과 관계된 조사관 여러 명에게도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코멘트를 요청했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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