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소리 나는 서울지하철 역명...치솟은 입찰가에 이름 빼는 병원들

김명지 기자 2024. 1. 3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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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명 병기 뛰어든 에이치플러스양지병원, 대항병원, 서울대병원
지하철 역명 병기사업 입찰가 치솟아 최근 입찰 잇따라 포기
3년간 표기에 신림역 5억, 사당역 6억, 혜화역 4억원
“가로수길 빈 상가처럼 역명도 비워두나” 불만
서울지하철교통공사 /일러스트=조선DB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은 지난해 7월 서울교통공사가 진행한 ‘역명병기’ 사업 입찰 참여를 포기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일정 이상 비용을 내면 인근 지하철 역 이름에 기업이나 기관 명칭을 같이 쓰게 해줬다. 계약기간은 3년이다.

양지병원도 이 사업 도입 첫 해인 2017년부터 참여해 신림역 역명과 병기하는 권리를 확보했다. 지하철 역 표지판과 전동차 노선도에 신림역 명칭과 함께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을 함께 쓰고, 전동차가 신림역을 지날 때마다 ‘이번 역은 신림,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역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양지병원은 2020년에도 입찰에 참여해 2억원 선에서 재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진행된 신규 입찰에서 공사가 제시한 최저 입찰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3년만에 기존 사용료 2억원의 2배가 넘는 5억775만원이 최저 입찰가로 제시된 것이다.

양지병원 외에 신림역 역명병기 사업에 입찰한 입찰자는 없었다. 병원은 유찰을 확인한 뒤 3억원 선에서 수의계약을 제안했지만 거절됐다. 공사는 양지병원이 지난 2017년부터 신림역 역사 곳곳에 세워둔 역명 병기 표지판을 지난해 연말 ‘신림역’으로 모두 교체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지하철 28개 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역명병기’ 사업에 14개 기업과 기관이 계약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5곳은 병원이다. 지하철 5호선 발산역은 에스앤유서울병원이 낙찰을 받았고, 고덕역은 강동경희대병원, 7호선 하계역은 을지대을지병원, 사가정역은 녹색병원, 석촌역은 한솔병원은 2차례 유찰 끝에 수의 계약했다.

하지만 기존 병원들이 역명 입찰을 포기한 사례들도 속출했다. 신림역을 사용하던 양지병원이 대표적이고, 4호선 사당역의 대항병원, 혜화역의 서울대병원도 이번 입찰에서는 빠졌다. 세 병원이 입찰을 포기한 것은 가격 때문이다.

신규 입찰에 성공한 지하철 5호선 발산,고덕,하계, 사가정, 석촌역은 1억~2억원에서 계약이 체결됐다. 하지만 병원들이 입찰을 포기한 곳은 기존 계약 금액의 2배가 넘는 4억~6억원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신림역의 최저입찰가는 5억여원, 사당역 6억3000만원, 혜화역은 4억여원에 이른다.

한때 서울 지하철 역명 병기 사업은 대형 병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대형병원은 환자들이 대중교통을 타고 방문하고 있어 이 사업이 도입되기 전에도 인근 지하철 역사에 조명, 스크린도어 광고나 전동차 패널 광고를 통해 홍보해왔다. ‘빅5′ 대형병원이 아닌 병원들은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몇 안되는 방법이다.

지난 2017년 첫 입찰에서 신림역의 최저입찰가가 1억원 내외이던 점을 보면 당시만 해도 비용은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서울교통공사가 2022년 병기 역명 대상기관 중 의료기관 기준을 대폭 완화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과거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전문병원처럼 150병상 이상 병원만 입찰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의료법에서 의료기관이라면 모두 입찰 참여가 가능해졌다.

입찰 금액은 고공행진하기 시작했다. 지난 2022년 지하철 7호선 논현역은 개인 안과 병원이 3년 계약에 9억원에 낙찰받았다. 지하철 5호선 발산역은 70병상의 에스앤유정형외과가 최저입찰가보다 8000만원 높은 3억여원을 써내며, 1000병상의 이대서울병원을 제치고 낙찰을 받았다. 공사 측에선 부족한 재원 확보 측면에서 유리한 방식이지만 병원들은 과도한 경쟁을 해야 하는 ‘치킨게임’이 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역명 병기 사업의 입찰 흥행을 위해 돈을 많이 내는 사람이 낙찰받는 구조를 만들면서 부담을 키웠고, 입찰가를 너무 오히려 참여가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최근 유찰된 강남역의 최저입찰가는 8억6000만원에 이른다.

의료계 관계자는 “가로수길 플래그십 스토어 건물주들이 일부러 상가를 비워두는 전략을 쓴다고 하지만, 지하철 역명으로 ‘비워두는’ 전략을 쓰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유찰된 14곳에 대해서 올해 사업으로 신규 입찰 공고를 내겠다고 밝혔다. 공사 관계자는 “역명병기 사업의 최저입찰가는 외부 원가 조사 기관에게 연구용역을 주고 그에 맞춰 설정한다”며 “올해 사업에서 새로운 원가조사를 통해 새로 해서 신규 입찰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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