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치한 서연고’…의대로 향하는 학생들 ‘말말말’ [인기척]
설 연휴 전후 의대 증원 규모 발표 가능성 커
“의대 쏠림은 당연”
“취업 보장 안 돼…안정적인 의대로”
“점수 남기고 다른 이공계 가고 싶지 않아”
“의대 정원 늘면 교육 질 저하될 것”
2023학년도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이른바 ‘SKY대학’ 정시 모집 합격자 중 1,343명은 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5년 새 최고치입니다. 반면 의대 등록 포기자는 줄고 있습니다. 서울대 의대는 최근 5년간 정시 합격 포기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서울대 합격생은 의대로, 연세대·고려대 합격생은 서울대나 의대·치대·약대로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처럼 미등록 인원이 늘어난 것은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를 선호하는 현상 때문입니다.
다음달 1일 정부가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및 의대 정원 규모를 발표할 전망인데, 일부에서는 이 정책이 의대 쏠림 현상을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의치한약수, 일명 ‘메디컬’로 향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단국대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20살 이상민 씨는 22학년도 수능을 보고 고려대에 입학했다가 23학년도 수능을 한 번 더 봤습니다. “(22학년도 수능) 당시 생각보다 성적이 잘 안 나왔어요. 원래 의대를 목표로 하긴 했지만 그게 안 된다면 국문학, 특히 문법 같은 걸 연구하는 걸 좋아했어서 국어국문학과에 교차 지원했었죠.”
고려대 학생으로 나름의 낭만을 즐겼다는 이 씨는 2022년 가을을 회상하며 의대에 재도전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사실 8월, 9월까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의대를 아깝게 떨어졌기도 하고 사실 경제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이걸(국문학) 연구해서 안정적인 경제 기반을 꾸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나중에 직업을 뭘 하나 생각했을 때 길 자체가 확실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멋쩍은 웃음을 보인 이 씨는 국문학이 아닌 다른 전공이었어도 의대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보장된 진로가 없고 직업을 갖게 된 후에도 안정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공계열 학생들이 의대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를 묻자 이 씨는 연구 지원 부족과 직업적 안정성 미비를 꼽았습니다. “공대에 가면 대학원까지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연구 활동에 지원되는 비용 자체가 부족한 것 같아요. 일반 회사 취업을 한다고 해도 나름 스펙을 쌓아야 하고, 정년이 있으니까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없는 경우도 많고요.” 의학 연구에 관심이 많다는 이 씨는 고등학생 시절 생명 공학을 비롯한 타전공 연구에도 흥미를 느꼈지만 이러한 이유로 의대를 선택했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서는 “결론적으로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필수의료 인력 충원, 지방과 수도권의 의료 격차 해소를 목표로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자 한다면 정원을 늘려서 기대 효과를 얻을 수 없을 듯 싶다는 겁니다. “정원을 확대한다고 해서 유입된 인원이 기피과로 간다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비보험이 되는 인기과들, 그리고 수도권으로 인원을 밀집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분야 의료사고 부담을 완화하고 소아청소년과 등 인력부족 과에 수당을 확대하는 의료 인력 분산 정책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또 많게는 2천 명 이상 의대 정원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과 관련해 교육의 질적 저하가 우려된다고 답했습니다.
“병원에서 실습을 하게 되면 교수님이 학생 개개인을 봐주시는데, 인원이 많아지면 당연히 학생 개인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줄겠죠. 의사 양성을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데, 교육 인프라를 갖추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요.” 지도 교수의 수를 단기간에 늘릴 수 없음에도 학생 수를 한 번에, 그것도 많은 수를 늘리면 의료계에 혼란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이공계로 대학에 입학했다가 치과대학으로 발걸음을 돌린 21살 박재민(가명) 씨도 만나봤습니다.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21학번으로 입학했던 박 씨는 현재 경북대 치대 본과 1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박 씨 역시 치대를 선택한 이유로 안정성을 언급했습니다. “아무래도 (치대는) 정해진 길이 있고 이것만 착실하게 하면 (치과의사는)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 있는 직업이라 끌렸던 것 같아요.”
이공계 학생들이 ‘메디컬’로 향하는 이유로는 의치한약대의 높은 입학 시험 결과를 들었습니다.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게 메디컬이잖아요. 자기 점수를 남기고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죠. 주변 친구들을 보면 물론 직업적 사명감도 있겠지만 성적에 따라 온 학생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의대를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는데 이보다 커트라인이 낮은 다른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는 취지입니다.
올해 연세대 의예과에 합격한 18살 김모 씨 의견은 조금 달랐습니다.
김 씨는 의대 쏠림 현상은 당연하다면서도 의대 정원 확대는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서울대를 나와도 일반 학과면 취업이 보장되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전공을 원했던 사람이어도 성적이 된다면야 당연히 의대를 선택할 것 같아요. 의사는 의대를 가기만 하면 거의 되잖아요. 취업이 명확하게 보장되지 않으니까 그 불안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의대에) 쏠리는 것 같아요.”
김 씨는 의대로 향하는 학생들을 부정적으로 볼 순 없다면서도 학생들 분산은 필요할 것 같다는 취지로 말을 이었습니다. 이공계로 유입되는 인재가 부족해지면 과학기술 발전이 저하되고,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IT 강국인데 이공계에 더 투자를 늘려서 인력을 끌어들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의대 정원 확대에 관해서는 현재 한국 의료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찬성한다면서도 복지부 정책에 의구심을 표했습니다. “지금 의사들의 반대가 너무 심하고 파업까지 말이 나오고 있잖아요. 지금 의대 정원이 3,000명 수준인데 갑자기 2,000명 늘린다는 말이 나오니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어떤 파급력을 끼칠까 걱정되는 것도 있어요.”
내일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 민생토론회에서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발표될 가능성이 큽니다. 본래 의대 증원 규모도 이날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의료계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면서 의대 증원 규모는 이와 분리해 설 이후 발표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입니다.
복지부는 최근 지역·필수의료 분야의 의사인력 부족으로 의료 공백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고, 인구 고령화와 다양한 의료 수요 증가로 의사인력이 더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의대 정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의협은 어제(30일) 성명을 통해 필수 및 지역의료의 인프라가 부족한 원인은 의사 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료사고 법적 부담, 근무여건 악화 등 해당 분야의 열악한 환경과 정부의 지원 정책 부재 등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반박했습니다. 또 증원이 야기할 의대 쏠림 심화 문제 해결과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의학 교육 인프라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비판했습니다.
정부와 의협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코앞으로 다가온 의대 증원 규모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발표가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주목됩니다.
※ 인기척은 MBN '인'턴 '기'자들이 '척'하니 알려드리는 체험형 기사입니다.
[박지윤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bakjy785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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