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에 피해자 탓, 감형, 불송치…그 검사·판사·경찰 누구?

장수경 기자 2024. 1. 3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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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상담소, 수사·재판 모니터링
피해자 인권침해 ‘걸림돌’ 12명 선정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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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팀장 ㄱ씨는 직원 ㄴ씨와 대화 도중 갑자기 ㄴ씨의 가슴을 만졌다. ㄴ씨는 ㄱ씨를 고소했다. 사건을 맡은 천안문 전주지방검찰청 형사1부 검사는 ㄱ씨를 기습 추행이 아닌 폭행 혐의로 기소했다. ‘피해자가 행위를 유발했다’는 게 이유였다. 천 검사는 기습추행 불기소 이유서에 “고소인은 신체 접촉 직후 피의자로부터 ‘네가 이러면 만지고 싶잖아’라는 말을 들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는데, 그 표현상 피의자의 행위에 선행하는 원인이 있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며 “고소인이 당시 피의자의 언동에 불쾌감을 느낀 나머지, 신체 접촉 부위와 유형력 행사 정도 등을 다소 과장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천 검사는 직장상사인 ㄷ씨가 ㄹ씨를 기습추행하고, 1년 뒤엔 술에 취한 ㄹ씨를 성폭행 하려 한 사건에 대해서도 ㄹ씨가 피해 직후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ㄷ씨와 일상적 교류를 했다는 이유로 ㄷ씨를 불기소하기도 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는 최근 “성폭력으로 인지한 피해자의 입장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며 천 검사가 피해자 인권 보장에 ‘걸림돌’이 됐다고 밝혔다. 전성협은 천 검사를 비롯해 지난해 성폭력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2차 가해한 사건 담당자 12명(6개 사건)을 ‘걸림돌’로 선정하고, ‘특별 걸림돌’ 사례 1건 등을 선정했다. 전성협은 31일 오전 이들에 대한 시상식을 열었다. 전성협은 2004년부터 매년 전국 성폭력 사건을 모니터링해 피해자 인권 걸림돌 등을 선정하고 있다.

또다른 걸림돌로 선정된 이동희 춘천지법 강릉지원 제1형사부 판사의 경우, 2022년 성인 남성 6명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알게 된 초등학생 2명에게 용돈이나 게임기 등을 주며 유인해 성폭력을 저질렀는데도, 피해 아동들이 저항하거나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과 공탁을 했다는 점을 감경 요소로 판단한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전성협은 “피해자가 엄벌 청원서를 수십 번 냈음에도 가해자의 일방적인 공탁을 감경 요소로 보았다”며 “재판부가 금전적 이익을 매개로 아동의 성에 접근하는 아동 성착취 범죄의 특수성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전남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팀의 송영주·김정환 경위 등은 마을 주민 13명이 여성 장애인을 오랜시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피해자에게 조력 절차를 안내하지 않았고,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며 성폭행을 인정한 1명과 사망한 2명을 제외한 10명에 대해 불송치를 결정해 걸림돌로 선정됐다. 또 ‘특별 걸림돌’에는 피해자가 신청한 판결문 발급조차 재판부의 허가 사항으로 처리한 서울서부지법 형사과가 선정됐다.

반면, 성폭력 사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한 ‘디딤돌’상은 성희롱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박진성 시인에게 실형을 선고한 대전지법 형사4부의 구창모·김기호·송현섭 판사 등이 받았다. 전성협은 “재판부는 원심과 달리 (피해자와 합의 없는) 피고인의 공탁 납부 행위와 반성 여부보다 ‘피해자에게 현존하는 피해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살폈다”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중증 지적 장애가 있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피해자의 눈높이에 맞춰 수사한 사례(포항북부경찰서 형사과 나원우 경감)와 국외에 서버가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가해자를 검거한 사례(대전경찰청 사이버수사과 이하나 경위) 등 10건이 디딤돌 사례로 뽑혔다.

‘특별 디딤돌’상에는 재판에 출석한 피해자 가족에게 “피고인 가족도 힘들 수 있다”며 합의를 강요한 재판관의 발언을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국가인권위원회 침해구제 제1위원회가 선정됐다. 또 걸림돌에 선정된 지적장애인 성폭력 가해자 불송치 사건에 이의를 제기해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이기림 활동가도 뽑혔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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