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부산·전주서 4시간 달려 국회로..."중대재해법 유예" 한목소리
40년 넘게 부산에서 기계 제조사업을 한 이모 대표(69)는 31일 오전 5시에 일어나 회사가 아니라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에 갈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년 이맘때 이 사장은 직원들에게 줄 상여금을 챙기기 위해 거래처에 수금을 하러 다녔다. 직원을 30명 남짓 둔 이 사장은 수금 외에도 영업, 총무에 생산까지 일인다역을 한다. 그런데도 일정을 취소하고 4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서울로 향한 것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해달라는 목소리를 국회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오는 2월1일 국회 본회의는 법 적용을 유예할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해 중소기업과 건설업계 17개 협단체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중대재해법 유예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은 오후 1시30분로 예정됐지만 정오쯤부터 "중소기업 죽으면 차는 누가 만드나", "아파트는 누가 짓나", "기업 의욕 사라진다", "처벌 불안 없애달라" 등 빨간색, 파란색 피켓을 든 중소기업인들이 가로 약 200m, 높이 20m 국회 본관 앞 계단을 가득 메웠다. 더 이상 자리가 없자 계단 양옆과 본관 건너편 잔디광장 쪽도 중소기업인들이 채웠다.
중소기업인들에게 회견 일정이 공지된 것은 전날(30일)이었다. 기한이 촉박해 주최 측도 중소기업인 참석률이 높을 것이라고 자신하지 못했다. 이날 주최 측 추산으로 회견에는 약 3500명이 참석했다. 중소기업인 수천명이 야외 단체행동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소기업인들은 부산과 경남, 경북, 전북, 전남, 인천, 서울, 심지어 제주에서 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몰려왔다.
이들은 중대재해법이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재정, 인력 여건을 감안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은 기업마다 안전 전문인력을 채용하고, 수시로 위험성 평가를 하는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게 했는데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려 생산직 근로자도 채용하지 못하고 행정력이 미흡한 중소기업이 준수하기에 기준이 까다롭다는 것이다. 법의 기준이 대기업, 중견기업에 맞춰져 있다는 지적도 꾸준했다. 이 대표는 "행정인력을 한명밖에 두지 못해 대표인 내가 영업과 생산에 인사, 회계, 총무까지 겸업하는데 어떻게 별도 인력을 고용하고 전문적인 안전 체계까지 만들라는 것인가"라 말했다.
이 사장은 "정부의 컨설팅 사업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모집 기업도 적어 받지 못했다"며 "민간 컨설팅을 알아봤는데 2000만~3000만원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받겠는가"라고 말했다. 정부의 공식 중대재해 컨설팅을 받은 기업은 전체 50인 미만 기업의 4.4% 수준이다.
부산에서 풍력 발전 설비를 제조하는 김모 대표(61)도 "중대재해법은 지나치게 처벌 위주로 만들어졌다"며 "법 적용 전에도 기업 자체 예산으로 안전 설비에 투자하고, 직원들 교육을 했는데 처벌보다는 이런 노력을 고도화할 수 있게 지원 예산을 늘리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은 법이 그대로 적용되면 수많은 중소기업이 폐업할 것이라 우려했다. 전북 전주에서 약 4시간 이동해 회견에 참석한다는 김모 대표(70·가구 제조업)는 "중대재해가 발생해 수사, 재판을 받으면 발주가 끊기고 결국 사업을 망칠 것"이라며 "지금으로서 중대재해법은 기업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사업을 못 하게 하는 법"이라 강조했다.
중대재해법은 지난 27일부터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 확대 적용되고 있다. 법 적용 유예 법안은 아직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도 상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유예에 찬성하는 국민의힘은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에 유예 기간을 줄여서라도 2월1일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제안한 상황이다.
기업인들은 "771만 중소기업도 대한민국 국민이다"라 적힌 대형 천막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했다. 회견을 주최한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정쟁을 뒤로 하고 민생을 우선해야 한다"며 "바쁜 와중에 생업을 내려놓고 국회 앞에 몰려온 중소기업인들의 외침을 국회가 똑똑히 듣고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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