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글로벌 벤처강국 도약의 길

2024. 1. 3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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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벤처생태계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지난 연말 그동안 한시법으로 운영되던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이 상시법화 되면서 벤처지원 정책의 지속적인 설계가 가능해졌다.

벤처기업법은 벤처기업 정의는 물론 자금, 인력, 입지 등 기업활동을 비롯해 벤처생태계 육성과 지원 체계의 근간이 되는 법이다. 이번 법 개정은 벤처기업을 위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정책 환경을 마련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지난 1997년 벤처기업지원 기반 구축을 내용으로 담은 벤처기업법은 혁신성이 높은 기업을 벤처기업으로 발굴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자 제정됐다. 세제·금융·입지·인력 등 지원제도로 지난해 말 기준 벤처기업은 4만개, 매출 1000억원 돌파 벤처기업 869개사 등 커다란 양적 성장을 달성했다.

정부 벤처정책은 그동안 단기적인 성과, 즉 벤처기업이나 유니콘 수와 같은 정량적 수치에 치중해왔다. 벤처기업법이 한시법으로 운용된 탓이다. 물론 씨앗을 많이 뿌려둬야 나무로 자랄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충분한 햇빛과 물을 지속 공급하지 않는다면 결국 씨앗에서 싹이 트지 않는 법이다.

12만8000개사에 달하는 벤처이력기업을 씨앗으로 표현한다면, 그중 싹을 틔우고 성장한 벤처천억기업은 2022년 기준 0.7%(869개사)에 불과하다. 해외시장에 진출한 벤처기업도 20%대에 머무르고 있다. 지금까지 벤처기업의 질적 성장에는 지원책이 상대적으로 미흡했음을 보여준다. 벤처가 성장해야 매출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법 개정은 벤처기업지원 패러다임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바꿀 절호의 기회다. 벤처기업에 대한 획일화된 지원방식에서 벗어나 기업특성에 부합하는 지원방식으로 전환하고, 벤처생태계 현황진단으로 단기·중장기 과제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해외시장 성공 가능성, 고용 추이, 매출 성장 흐름 등을 고려해 벤처기업 세부 유형을 설정하고, 세부 유형과 성장단계별 특성을 고려한 지원 방향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수 벤처기업이 중견벤처로 스케일업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선, 시장 친화적인 규제환경 정책이 필요하다. 세계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큰 물결 아래 대변환의 시대를 맞았다. 각 국가는 빠른 변화 속에서 각 산업 분야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국가경쟁력 저하와 저성장 고착화에도 불구하고 산업 전반에 걸쳐 복잡다단한 규제환경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법률·정책상으로 나열된 것들만 허용하는 기존 '포지티브 규제'에서, 명시된 금지사항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 등 단호하고 진취적인 규제혁신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신산업 분야 규제수준을 미국 등 선진국 수준으로 일괄조정하는 기준국가제 규제개혁 대원칙도 수립해야한다.

혁신자금 공급을 위한 투자 인프라 확충과 세제지원 확대, 기업공개(IPO)·인수합병 등 회수시장 활성화 정책도 시급하다. 국내 벤처투자는 신용대출과 벤처캐피털(VC)의 초기투자에 집중된 실정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연속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메가펀드 수준의 한국형 비전펀드 조성과 모태펀드, 민간 모펀드 확대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글로벌 투자에 대한 각종 펀드 용도, 국내 투자 비율 제한도 완화해 민간 자본과 해외 VC가 과감하게 국내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벤처기업의 우수 인재 확보도 빼놓을 수 없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신기술 분야 기술인력 양성과 고급인력으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 대학교육도 현실에 맞게 기업현장 중심으로 전환해 졸업 후 바로 현장투입 가능한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더불어 초·중등 교육과정에 기업가정신 교육을 의무교육으로 도입해 미래 혁신창업가를 키워내는 장기적인 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인구 절벽에 다다른 만큼 생산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벤처기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해외인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해야한다.

벤처기업 글로벌 진출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역시 중요하다. 2021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8100억달러(약 2406조9380억원)로 세계 전체 GDP 96조5100억달러(12경8338조9980억원)의 약 1.9%에 불과하다. 국내 벤처기업 열 곳 중 여덟 곳이 협소한 내수시장에 머물러있다.

개별기업의 글로벌 진출은 쉽지 않은 과제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내기엔 많은 시간과 자본이 투입된다. 벤처기업은 창업 단계부터 기술 개발과 마케팅 등 모든 요소에 글로벌화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

정부는 해외 공관 활용 확대, 해외인력 근무여건 조성, 투자·시장 정보에 대한 데이터 구축, 수출입·해외투자·기술무역 등 글로벌 진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혜택 부여 등 민간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장기반 확충에 나서야 한다. 벤처·스타트업이 협업할 수 있는 복합 비즈니스 공간을 조성해 기업의 성장·협력 인프라를 확대하고, 벤처기업 세제·금융 지원제도 등을 유형·성장단계에 맞춰 재설계해야 한다.

특히 현재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벤처확인 우대제도를 개별 벤처확인기업 특성에 맞춘 유형·성장 단계별 우대혜택으로 전환해야 한다. 창업 실패 경험이 자산화되어 재도전이 가능한 재창업공제와 같은 창업 안전망도 구축해야 한다. 과거의 실패 경험이 주홍글씨가 아닌 성공을 위한 학습의 경험으로 인정받아 두려움 없는 창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투자자 인식과 금융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이번 법 개정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벤처생태계 경쟁력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기업활동을 지원해 벤처기업 성과를 창출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담긴 만큼 벤처업계 기대가 크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모아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목표를 수립하고 고도화된 범정부 지원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과감하고 신속한 혁신정책 이행으로 글로벌 벤처강국의 기틀을 닦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필자〉 성상엽 벤처기업협회장은 1972년생으로 대구 달성고, 연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앤더슨컨설팅을 다니다 2004년 위성통신 안테나·솔루션 전문 기업인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를 창업, 2016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2018년 전파방송기술대상 대통령 표창, 2020년 무역의날 장관 표창, 지난해엔 한국거래소 코스닥 라이징스타 선정, 광대역 국제위성통신 인증, 1억불 수출 탑을 수상했다. 2016년부터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20년 11월부터는 수석부회장을 역임하며 국가 경제 활성화와 벤처생태계 발전에 힘써왔다.

성상엽 벤처기업협회장

성상엽 벤처기업협회장(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 대표) eric.sung@kova.or.kr

2023 벤처기업 실태조사 결과(자료=벤처기업협회)
2023 벤처기업 실태조사 결과(자료=벤처기업협회)
벤처기업 경영 애로사항 - 벤처기업 경영 애로사항(자료=벤처기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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