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 청산 명령에 中 부동산 해법은…'과감한 조치' 내놓을까
해외 투자자보다 中 부동산 시장 안정·금융위기 차단에 방점 관측 많아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빚더미의 중국 헝다(恒大·에버그란데)에 대해 29일 홍콩 법원이 청산 명령을 내린 이후 중국 당국 해법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으로선 2년여 '앓던 이'를 뺀 것이지만, 안팎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아서다.
무엇보다 헝다의 주식과 달러채권은 홍콩 시장에서 거래되는 반면 헝다 자산의 90% 이상은 중국 본토에 있는 상황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중국 당국이 어느 쪽을 중시할 선택을 할지가 관건이다.
홍콩 법원 청산 명령에 부합한 조처를 한다면 해외투자자들로선 어느 정도 손실을 보전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중국 사정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헝다 청산 파장을 최소화하면서 여타 기업 생존을 도모하고 금융 위기를 차단하면서 주택 시장을 살려 경기 침체를 극복해야 할 처지여서다.
홍콩 법원 청산 명령에도 가타부타 말 없는 中
현재로선 중국 당국은 말 그대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헝다로부터 인공호흡기를 뗀 이후 중국 안팎의 시장 흐름을 면밀히 주시하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당국이 채권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헝다 급(級)의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등 부동산 개발 기업과 금융 시장 안정에 무게를 둔 '사후 처리'에 방점을 뒀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헝다의 디폴트 직면 이후 중국 전역에서 헝다가 시행해온 수십만 채 주택 공사가 중단했고, 수천 개의 하청 업체에도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해외 투자자들은 좌불안석이다. 투자자 이익을 항상 중국 공산당과 중국민의 뒷전에 둬온 관행으로 볼 때도 투자자에게 유리한 조처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인민법원(대법원)이 지난 29일부터 '내지(본토)와 홍콩특별행정구 법원의 민사·상사 사건 판결 상호 인정·집행에 관한 안배'의 정식 시행에 들어갔지만, 투자자들은 중국 당국이 홍콩 법원 결정을 따를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이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중국 본토와 홍콩이 서로의 민사·상사 분쟁 판결을 인정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해 사건 당사자가 양쪽에 각기 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없게 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으나, 거기엔 파산을 '적용 잠정 배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서다.
해외 투자자들 손실을 선순위 또는 뒷순위에 둘지는 결국 중국 당국이 결정한다는 얘기다.
헝다가 남긴 자산과 부채는 작년 6월 말 기준으로 각각 1조7천440억위안(약 323조9천억원)과 2조3천882억위안(약 443조6천억원)에 달한다. 헝다 주식은 법원 명령 직후 주당 0.16홍콩달러(약 27원)로 거래가 중단됐다.
중국 당국이 본토 내 이해당사자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투자자의 손실을 최대한 보장해줘야 한다는 게 중론이지만, 둘 다 만족시키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이미 서방에선 중국 당국을 겨냥해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다. 본토 헝다 자산을 중국 채권자 빚을 먼저 갚고 부동산 위기를 해소하는 데 사용하는 쪽으로 주력하되 투자자 손실 보전을 경시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럴 경우 외국에서 중국 경제 비관론이 심해지고 중국 기업들의 자금 조달 중심지로서 홍콩의 역할이 약해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중국 내 사정이 더 급해 보인다.
한마디로 '제 코가 석 자'인 셈이다.
헝다 청산은 '끝 아닌 시작'…中경제 회복, 결국 부동산에 달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1일 헝다 청산 명령으로 중국의 부동산 위기의 상징은 사라졌지만,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고 짚었다.
2021년 헝다의 디폴트 위기 이후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전반에 유동성 부족 사태가 초래됐고 주택 가격 폭락에 이은 주택구매 급감 등 부동산 위기가 닥쳤다. 돈을 댄 자산관리회사 중즈(中植)그룹 등 금융기업들의 위기가 현실화한 상황에서 헝다가 청산되는 것 자체로 사태가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보는 시각이다.
중국에서 부동산은 GDP(국내총생산)의 20%를 훨씬 넘고 중국인 재산의 80%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부동산 과열에 따른 '일본식 장기불황'을 염려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동산 대신 전기차·배터리·태양광 패널 등의 첨단 산업을 중국 경제 성장으로 주요 동력으로 삼으려 했으나, 현재로선 부동산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주택 가격 폭락에 따른 실질적인 부(富)의 급감으로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탓에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아 지난해 내내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을 걱정해야 했던 상황이다. 부동산 발(發) 연쇄적 악순환 구조인 셈이다.
WSJ은 미·중 무역 갈등 파고가 다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중국의 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 성장률이 둔화가 예상되지만, 올해도 부동산 문제가 중국 당국의 주요 경제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주택 가격과 매출 하락이 가계에 타격을 줘 소비자 지출을 억제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지방 정부의 세수 감소가 초래되고 인프라 건설 지출에 자금을 조달할 여력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중국 당국이 부동산 거품을 경계하면서도 부양책을 조심스럽게 제시해야 할 처지라고 WSJ은 전했다.
잦아진 中 부동산·금융 대책…결정적 한 방은 '글쎄'
사실 홍콩 법원이 독자적으로 청산 명령을 내렸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수년간 중국의 골칫거리였던 헝다 문제와 관련, 초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가 망하도록 정부가 방치하겠느냐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전망을 깨고 청산 명령이 나오기까지 중국과 홍콩 당국이 숙의 끝에 파장을 최소화할 시점을 고른 것이라는 추론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근래 중국 당국이 취한 부동산 관련 대책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실제 최근 몇 주간 중국 당국은 자국 내 은행에 더 많은 현금을 제공하고 공매도 차단을 위한 규정을 강화했는가 하면 중국 내 주택 구매 촉진을 위한 여러 가지 조처를 해왔다.
이달 들어 5일 인민은행과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은 대부분의 젊은 노동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집값이 비싼 대도시에서 임대 주택의 공급을 늘리겠다면서 더 많은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16일에는 식품과 에너지, 도시화 프로젝트에 투입할 1조위안(약 185조원) 규모의 특별 국채 발행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23일에는 증시 안정화를 위해 2조위안(약 370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이어 24일 판궁성 인민은행 총재는 내달 5일부터 지급준비율(RRR·지준율)을 0.5%포인트(p) 내려 시장에 장기 유동성 1조위안(약 188조원)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중국 주택도시농촌건설부는 26일 부동산 대출을 늘릴 목적으로 자금 지원 대상 주택 프로젝트 목록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27일 광저우시는 120㎡ 이상 주택은 현재 집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도록 주택 구매 규정을 대폭 완화했다.
아울러 28일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증감회)는 일정 기간 주식 대여 서비스를 전면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가 그 주식을 빌려주고 대여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공매도 등으로 사용되는 주식 대여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이달 들어 쏟아낸 조처들은 헝다 청산 이후 시장 불안을 차단함과 동시에 부동산 시장 위기를 해소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중국 안팎에선 이런 정도 부양책으로 중국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고 소비 증가로 이어져 중국 경제가 회복의 길로 갈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노무라증권의 팅루 중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고객에게 보낸 메모에서 "단기적으로 가장 좋은 정책은 중앙정부가 특별기금을 마련해 주택을 공급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WSJ가 전했다.
주목할 대목은 중국 당국의 일련의 조치에 헝다 해외 투자자를 고려한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불안한 까닭이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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