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 4회 vs 후반 25회, 후반에 살아나는 클린스만호 미스터리

황민국 기자 2024. 1. 3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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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31일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알라이얀 | 연합뉴스



축구에서 선제골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누가 먼저 첫 골을 넣느냐에 따라 경기 흐름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시안컵에서 64년 만의 우승에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클린스만호는 이 부분에서 만점을 받기 어렵다. 아시아 최강이라는 평가에 걸맞은 전력을 갖추고도 한 수 아래 상대에게 끌려가다 힘겹게 따라가 역전하는 경기가 잦아지고 있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8강 티켓을 따낸 31일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1-1 무·승부차기 4-2 승)도 그랬다.

이날 한국은 전·후반의 경기력 차이가 극심했다. 전반은 실망 그 자체였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60)이 꺼낸 승부수는 무기력했다. 클린스만 감독도 “전반에는 우리가 느리게 시작한 것 같다. 좋은 장면은 후반에 더 많이 나왔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클린스만 감독이 준비한 ‘캡틴’ 손흥민(토트넘)의 전진 배치와 함께 스리백 수비 전환이 통하지 않은 탓이다.

전술의 상성이 나빴다. 클린스만 감독은 수비수 셋을 후방에 배치해 공간을 내주지 않겠다는 계산이었지만, 짧은 숏패스를 기반으로 공격을 풀어가는 사우디를 제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우디전을 하루 앞두고 비공개로 진행한 전술 훈련으로 새로운 옷을 입히기는 쉽지 않다. 실전에서 스리백을 실험한 것은 지난해 6월 페루와 평가전이 유일했으니 그럴 법했다. 실점만 없었을 뿐 경기력은 마치 사우디가 아닌 브라질을 상대하는 것처럼 끌려가는 느낌을 줬다.

실점도 당연했다. 후반전을 시작한지 단 1분 만에 교체 투입된 압둘라 하지 라디프(알타아원)에게 역습 위기에서 선제골을 헌납했다. 수비만 엉망이었던 것도 아니다. 측면을 기점으로 공격을 풀어가는 공격도 날카롭지 못했다. 양 측면 윙백이 공격 상황에서 번갈아 공격에 가담하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으나 최전방 공격수들에게 연결되는 비율(28%)이 너무 낮았다.

클린스만 감독이 패착을 인정하고 포백으로 전술을 바꾼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후반 19분 최전방 공격수인 조규성(미트윌란)과 미드필더 박용우(알아인)이 교체 투입되면서 기존 전술로 회귀한 것이 통했다. 경기 흐름을 잡고 맹공을 펼친 한국은 후반 종료 직전 조규성이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다.

전·후반의 경기력 차이는 한국이 사우디 페널티지역 볼 터치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스포츠통계업체 ‘옵타’에 따르면 한국은 전반 4회(사우디 6회), 후반 25회(사우디 5회)로 믿기지 않는 차이를 드러냈다. 사우디가 후반 들어 지키는 축구로 돌아선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아예 다른 팀이 아닌지 의심될 지경이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이 전반에 졸전을 치르고, 후반 교체 투입된 선수를 중심으로 맹추격하는 흐름이 대회 내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르단과 조별리그 2차전은 전반 상대 페널티지역 볼 터치가 5회였고, 후반에는 26회였다. 우승에 대한 기대치를 크게 낮춘 말레이시아와 3차전(전반 13회·후반 32회)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갑자기 역전의 DNA를 갖춘 ‘슬로 스타터’가 된 것인지, 아니면 클린스만 감독이 준비하는 전술마다 실패한 것인지 고민스럽다.

지금과 같은 흐름이라면 클린스만 감독이 출사표로 내놨던 우승도 쉽지 않다. 실제로 옵타는 한국이 2월 3일 오전 0시30분에 호주와 맞붙는 8강전과 관련해 한국이 승리할 확률을 33.7%로 매겨 언더독으로 분류했다. “선수들의 능력과 팀의 자질을 보면 충분히 우승 가능하다”는 클린스만 감독의 의지가 이 평가를 뒤집을 수 있을까.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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