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팜 속 키워지는 죽은 나무···주류·정상 지향하는 기술 꼬집다[미술관 옆 식물원]
“조망권 침해”로 잘린 나무 토막 담긴 스마트팜
그에 기생해 자란 버섯들···시각적·인지적 충격
소외된 존재 담은 작품 ‘무엇을 위한 기술인가’
미술관에는 수많은 식물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만난 식물들에게 한 발짝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는 ‘미술관 옆 식물원’ 코너입니다. 그림 속 식물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미술을 즐기는 또다른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 전 지구에서 살기 시작한 식물에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키가 15층 아파트 높이에 달하던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갑자기 사라졌다.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우리집 창문의 눈높이에서 보이던 유일한 ‘자연’의 풍광이었던 나무였다. 여름이면 초록빛으로, 가을이면 주황빛으로 물든 잎이 계절의 변화를 일깨워줬다. 나무는 ‘적합한’ 절차를 거쳐 잘려나갔다. 뿌리가 땅 속 깊이 뻗어 배수관을 건드릴 수 있다는 이유로 관리사무소에서 주민투표를 거쳐 베어내기로 한 것이다. 겨울휴가를 다녀오자 나무가 있던 자리엔 커다란 나무둥치와 톱밥만이 남았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미술관 송은에서 열리고 있는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유화수의 ‘재배의 몸짓’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곳에 사람이 잘라버린 죽은 나무가 있었다. 정확히는 스마트팜 시스템을 갖춘 유리상자 안에 죽은 나무토막과 그로부터 왕성히 자라난 버섯이 있었다. 유화수는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베어진 나무를 최첨단 스마트팜에 넣고 ‘재배’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40년 된 빌라의 나이만큼 오래된 나무들의 키가 3층 빌라 높이까지 자라나자 주민들은 반상회를 열어 나무를 없애기로 했다. 느티나무, 아카시아나무, 목련나무, 벚꽃나무 12그루가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유화수는 상추, 토마토, 허브 등 인간이 즐겨먹는 작물을 재배해는 스마트팜 안에 느티나무 토막을 넣었다. 나무는 죽었지만, 나무의 몸통에 붙어 자라던 운지버섯은 알맞은 온·습도가 갖춰진 유리상자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무를 비늘처럼 뒤덮은 버섯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디스토피아적이다. 인간의 쓸모를 위해 개발된 기술이 원래의 목적과 어긋나게 사용되는 모습이 시각적 충격과 함께 인지적 충격을 던진다.
“죽은 나무에 기생하는 생물에게 첨단기술을 적용하고 비용을 투자하면서 생을 유지하는 장치입니다. 실용적이고 합리적 선택을 추구하는 오늘날 이런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다들 아실 겁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진지하게 최신 기술을 배우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스마트팜 시스템을 구축하고 좋은 장비를 동원해 재배 환경을 조성했어요. 버섯의 생태 데이터를 수집해 온도·습도·바람 세기를 테스트하며 작업이 안정됐습니다.” 지난 30일 유화수를 전화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버섯의 존재감에 주의를 사로잡혀 있다가 주변에서 울리는 진동음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스마트팜 뒤 벽면에는 겨울눈이 달린 목련나무 등 잘려진 나무가지들이 헌팅트로피처럼 걸려있는데, 사람의 움직임을 센서가 감지해 떨리면서 내는 소리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관람객은 진동음을 듣고 나무가지들의 존재를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유화수는 “체인톱으로 나무가 잘려나가는 장면을 연출한 측면도 있고, 미래가 오로지 인간의 뜻에 달린 조경수의 불확실한 생존주기에 대한 불안함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유화수가 스마트팜을 작품에 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스마트팜에 잡초를 넣고 재배하는 ‘잡초의 자리’를 선보였다. 쓸모없다고 여겨 뽑아버리는 잡초, 한때는 조경을 위해 심었지만 거슬린다는 이유로 베어버리는 나무를 ‘재배’하는 작업은 스마트팜 기술이 목적하는 바와 반대 방향으로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무엇을 위한 기술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주노동자, 장애 문제 다룬 작품도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기술도 필요”
“대부분 혁신기술이 인간, 주류, 정상을 지향합니다. 그 과정에서 더 큰 소외와 배제가 발생하기도 하죠. 기술을 받아들이는 자와 따라오지 못하는 자로 나뉘기도 하고, 한때 첨단으로 여겨지던 기술이 한 물 간 기술로 버림받기도 하죠. 기술로 인해 소외된 대상이 생겼다면, 그 소외된 대상을 돌보는 새로운 기술도 고안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화수는 ‘재배의 몸짓’으로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했다. 유화수는 그동안 이주노동자, 장애 문제 등 주류에서 벗어나고 소외된 존재들에 대해 작업해왔다. <사이보그가 되다>를 함께 쓴 김원영 변호사와 김초엽 작가와 협업해 장애와 기술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회구성원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이들에 대한 관심은 저만 갖고 있는게 아니겠죠. 저 역시 도시빈민으로 육체노동을 통해 벌이를 하고, 작업실이 있는 지역은 이주노동자가 없이는 굴러가지 못하는 곳입니다. 요즘은 (양극화로) 사회의 가장자리가 점점 두터워지는 것 같아요.”
재개발 지역 호두나무의 한해살이 기록한 작품도
베어지는 나무의 생전과 사후 기록이 공존
송은미술대상 본선에 올라 함께 전시된 박형진의 ‘호두나무 April to May’ ‘호두나무 June to August’는 잘려나갈 운명에 처한 나무의 생장을 기록한 작업이다. 박형진은 재개발 예정지 호두나무의 생장을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글로 기록하고, 4월부터 8월까지의 변화를 색채로 환원해 그림속에 담아냈다. 캔버스를 작은 격자로 분할한 뒤 연두에서 초록으로 변해가는 색채로 채워넣었다.
“작은 연두, 붉은 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 빛이 참 근사하다”(4.24), “초록이 제법 농익었다. 마을은 사람이 떠나고 엉망이지만…”(7.7)는 식의 관찰일지가 세심하다면, 하늘색에서 시작해 진초록으로 변화하는 색채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군데군데 벌레가 파먹은 구멍까지 표현한 그림에선 애정과 유머가 느껴진다.
유화수가 인간이 베어버린 나무를 전시장으로 데려왔다면, 박형진은 베어지기 전 나무의 찬란한 한해살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베어지는 나무들의 생전과 사후의 기록이 한 전시장에 공존하는 셈이다. 전시는 다음달 24일까지. 무료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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