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추락사 그 후···성공한 아내에 씌워진 ‘이중굴레’[리뷰]
프랑스의 어느 외딴 별장에서 유명 작가 ‘산드라’(산드라 휠러)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학원생인 인터뷰어는 산드라의 작품 세계에 관해 묻는다. 산드라는 질문보다 질문자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때 다락방에서 단열 공사 중이던 남편 사무엘이 대화를 방해할 만큼 시끄러운 음악을 튼다. 시각장애인인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은 안내견 스눕과 산책에 나선다. 얼마 뒤 머리를 크게 다친 남편이 마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수사가 시작되고 산드라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화제작 <추락의 해부>가 31일 극장을 찾았다. 전작 <시빌>(2019)로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한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부부 관계에 현미경을 들이댄 법정 스릴러로 제인 캠피언, 줄리아 뒤쿠르노에 이어 최고상을 차지한 세 번째 여성 감독이 됐다.
<추락의 해부>는 아주 얄궂은 판을 깐다. 수사 결과나 정황, 증언을 두루 고려할 때 남편의 죽음은 타살도 사고사도 될 수 있다. 그의 돈, 커리어, 정신 건강 문제를 생각하면 자살이라 해도 그럭저럭 납득이 간다. 보통의 법정물이라면 재판 중간중간 플래시백을 넣어 인과를 설명할 테지만 <추락의 해부>는 이를 거부한다. 그럼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은? 법정에 뿌려진 퍼즐을 주워담아 각자의 그림을 완성할 뿐이다.
‘스모킹 건’이 없는 상황에서 던져지는 퍼즐이란 결국 부부 관계다. 산드라 부부의 결혼 생활은 도마 위 생선이 되어 뼈와 살, 내장으로 발라내어진다. 검사는 법이라는 메스로 산드라의 성적 취향, 외도 이력, 부부 간 커리어의 불균형, 가사 분담의 형평성을 법정 안에 펼쳐보인다. 남편이 죽음 직전 시위하듯 틀었던 50센트의 ‘핌프’(PIMP·포주) 가사가 “매우 여성혐오적”이라는 점도 산드라가 살의를 품을 계기로 몰아간다. 언론은 유명 작가가 휘말린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재판 과정을 중계한다. 산드라는 남편의 여성혐오의 피해자(인 살인자)이자 ‘성공한 여성’을 향한 세간의 여성혐오라는 이중의 굴레를 쓴다.
영화가 ‘추락’이 아닌 ‘관계’를 해부하는 가운데 숨막히는 긴장감이 러닝타임 151분 내내 이어진다. 별다른 플래시백 없이 말과 말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영화는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데 성공한다.
트리에 감독은 처음부터 ‘관계의 추락’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하강하는 한 인물을 기술적으로 묘사해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쇠퇴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담고자 했습니다.”
<토니 에드만>, <인 디 아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독일 배우 산드라 휠러가 자신과 같은 이름의 주인공을 맡았다. 휠러는 영어와 불어, 독일어를 오가며 복잡한 인물 산드라를 복잡하게 연기한다. 트리에 감독은 처음부터 휠러를 염두해 두고 각본을 썼다고 한다.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 다니엘 역의 밀로 마차도 그라너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다니엘과 함께 사건의 유이한 목격자가 된 개 스눕 역의 ‘메시’는 그해 최고 연기를 한 개에게 주어지는 ‘팜도그상’을 받았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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