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해제 1년 맞은 4대 과기원...“규제 풀렸지만 예산 없어 해외영입 제자리”

이병철 기자 2024. 1. 3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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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원 지난해 공공기관 지정 해제
해제 1년 체감 변화는 없어
핵심은 예산 확보
발전기금·기술이전 제도 개선 필요
공공기관에서 지정 해제된 후 1년차를 맞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에서 규제 개선 효과가 미비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인건비·인력 운영에 대해 자율성은 마련됐으나 이를 위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추가적인 제도 개선을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한국과학기술원

정부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을 공공기관에서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지난해 1월 공공기관을 벗어난 4대 과학기술원에 이어 2년 연속 과학기술계 기관이 공공기관이라는 행정 규제를 떨쳐내게 됐다. 그러나 공공기관 지정 해제 1년차를 맞은 과학기술원에서는 공공기관 지정 해제에 따른 효과가 예상외로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규제 개선이 연구 성과 확대로 이어지려면 재원 확보 방안과 자율적인 연구환경 마련을 위한 대책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획처장은 “공공기관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정책에 대해 매번 과기원의 특수성을 감안해달라고 요청해야 했던 문제에서 벗어난 효과는 충분하다”면서도 “세계 최정상급 인재를 초빙하기 위한 재원은 기관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4대 과학기술원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IGST), 울산과학기술원(UNIST)의 공공기관 해제가 결정된 후 지난해 4월 ‘과학기술원 관리 기준안’을 배포했다. 당시 관리 기준안에 따르면 해외 석학을 교수나 연구원으로 초빙할 수 있도록 ‘초빙 임용제도’와 연구책임자의 추천으로 박사후연구원이나 연수연구원을 뽑을 수 있는 ‘추천 임용제도’를 도입할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여성·중소·장애인·중증장애인·창업기업의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해야 했거나 매년 고객만족도 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의무도 사라졌다.

4대 과기원이 공공기관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도 이처럼 불필요한 규제에서 벗어나고 우수 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공공기관은 기관의 전체 인건비를 제한하는 ‘총액 인건비’ 제도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많은 급여를 줘야 하는 우수 인재를 교원으로 초빙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초빙 임용제도를 활용해 과기원이 우수 교원을 채용한 사례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제한은 풀렸지만 실제로 해외 석학을 초빙할 정도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올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기존 인력에게 지출하는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어려워졌다.

한 과기원 관계자는 “기존 인건비 상한선을 벗어나는 교원 임용은 발전기금을 활용해야 하나, KAIST를 제외한 3개 과기원은 지금까지 쌓여 있는 발전기금이 50억원 수준에 머무른다”며 “장기간 투입되는 인건비를 생각했을 때 석학을 초빙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과기원 관계자는 “경영전략이나 기획 부서에서 업무 부담이 일부 줄어들기는 했으나 핵심인 해외 우수 연구자 초빙에서는 기존과 달라진 점이 없다”고 말했다.

양승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공공기관 지정 해제로 예산이나 인력 편성에 자유로운 부분이 생겼지만 전체 예산 편성권은 여전히 기획재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자율성을 보장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공공기관에서 해제된 다른 출연연들도 특별하게 바뀌는 부분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권성훈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공공기관에서 먼저 해제된 과기원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예산과 인력 정원을 기재부가 쥐고 있는 만큼 과기정통부가 원하는 수준으로 출연연이나 과기원의 자유로운 운영을 보장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재원 확보 방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과기원에서도 추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발전기금을 기부하는 기업에게 혜택을 주거나 연구자들의 기술이전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용훈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은 최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전체 연구비에서 대학에 들어가는 비중이 9.1%로 독일이나 영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대학에 오는 연구비가 적어도 2조원 정도는 늘어야 선진국형 연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과기원 관계자는 “정부에서 지원받는 예산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외부 수입을 늘리는 방법뿐”이라며 “연구자들에게 주어지는 기술이전료에 대해 세금 면제 혜택을 되살리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8년부터 비과세였던 직무발명보상금을 근로소득으로 분류하고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같은 조치로 연구자들의 기술 개발 의욕이 저하되고 연구기관은 기술이전 수익이 감소한 만큼 제도 개선을 통해 부수입 창출을 장려해달라는 요구다.

이번 출연연의 공공기관 해제가 실질적인 연구 성과 확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도 정부의 관리 방안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과학기술계가 십수 년간 요청했던 공공기관 지정 해제가 결실을 이뤘으나 제대로 된 준비 없이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기재부가 당장 내년에라도 다시 출연연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도 있는 만큼 과기정통부가 나서서 출연연의 자율적인 운영을 보장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이번 공공기관 지정 해제가 출연연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은 지난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공공기관 해제를 시작으로 진행될 출연연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반대한다”며 공공기관 지정 해제가 아니라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와 과기연구회 체제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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