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족쇄 벗은 출연연, 인재 확보·인건비 관리 숨통 트인다

이종현 기자 2024. 1. 3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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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공공기관 지정 이후 17년 만에 해제
“혁신적·도전적 연구하도록 관리체계 전환 필요”
과기계 “과학기술 선진화 이행의 전환점” 환영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민간위원 오찬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유관기관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와 산하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공공기관에서 해제됐다. 2007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17년 만에 공공기관이라는 규제 족쇄에서 벗어나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31일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를 열어 과학기술 출연연을 공공기관에서 해제하기로 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과학기술 선점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혁신적·도전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관리체계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며 공공기관 지정 해제 사유를 설명했다.

출연연은 과학기술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으로 기업이 하기 힘든 기초연구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활동을 맡고 있다. 출연연은 당초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특수법인으로 설립됐지만, 2007년 공공기관에 지정되면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른 규제를 받기 시작했다. 연구기관의 특성에 맞지 않는 인건비, 정원 통제, 채용방식 제한 등의 규제를 다른 공공기관과 똑같이 적용받으면서 출연연의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과기연구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5년간 출연연을 떠난 연구자는 1066명에 이른다. 대부분 대학이나 기업처럼 안정적인 연구 환경과 보상 체계가 잘 갖춰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화학연구원장을 지낸 이규호 세종과학기술연구원 연구원은 지난 2022년 과기연구회에 제출한 출연연 혁신 방안 보고서에서 공공기관 해제가 시급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자율과 책임이라는 원칙이 상실되면서 연구 현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간섭, 근시안적 정책, 연구 몰입환경 조성에 역행하는 일련의 조치로 연구 현장의 사기저하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출연연이 연구와 경영에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우수한 연구 인력과 연구시설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인식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민간위원 간담회에서 출연연을 공공기관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건의가 나왔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윤 대통령도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획재정부는 협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출연연 공공기관 지정을 철회하기로 했다.

공공기관에서 벗어난 출연연은 기관 운영에서 자율성을 보장 받을 길이 열렸다. 가장 먼저 인재 채용 방식과 총인건비 활용에서 훨씬 융통성을 갖게 됐다. 출연연은 지금까지 인재를 뽑을 때 공모 채용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신속하게 영입해야 하는 우수 인재가 있어도 특별 채용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해외 우수 연구자를 자유롭게 선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출연연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공공기관으로 묶어서 관리하다보니 뛰어난 연구자는 데려올 수 없고, 처우 개선은 어려워 뽑아놓은 연구자는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계속 됐다”며 “모처럼 과학기술계에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총인건비와 정원도 출연연과 과기정통부가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공공기관일 때는 공공기관 운용지침과 기재부의 정원 심의를 거쳐서 정해진 틀에서만 운영해야 했다. 앞으로는 기관의 성과와 특성에 따라 인건비 인상률을 차등해서 적용하거나 정원도 지금보다는 폭넓게 관리가 가능해졌다.

과학기술계는 오랜 숙원을 풀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여러 과학기술인 단체들의 모임인 공공과학기술 혁신협의회는 “출연연 공공기관 지정 해제는 연구개발기관의 창의성과 탁월성 중심의 혁신을 통한 국가 공공과학기술의 세계적 성과 창출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며 “공공기관 해제 결정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중심의 과학기술 전문 행정의 회복으로 이어져, 자율과 책임의 연구개발과 몰입환경 회복으로 국가 과학기술 선진화 이행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공공기관 지정 해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제 첫 걸음을 뗐을 뿐, 출연연의 혁신을 위해서는 제도와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성훈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출연연이 혁신적인 연구 성과 창출로 이어지려면 단순히 공공기관에서 해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과기정통부 소관의 별도 법률을 만들어서 지속 가능한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권 조사관은 “출연연이 원하는 대로 우수 인력을 채용하고 인건비 재원을 늘리려면 재원 확보 방안도 있어야 하는데, 과기정통부 혼자 해결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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