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증도, 휴대폰도 없었다… ‘일본 전범 기업 폭파범’ 50년 수배 어떻게 피했나
월급 현금으로 받고 신분증 없이 살아
음악 좋아해 라이브 주점 자주 가기도
스마트폰, 컴퓨터, 거리의 폐쇄회로(CC)TV에 사람의 행동이 일일이 기록되는 디지털 세상에서 약 50년 동안 신원을 감춘 채 생활하는 것이 가능할까. 일본 전범 기업 대상 연속 폭탄 테러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수배됐던 기리시마 사토시(70)가 사망 나흘 전 신원을 밝히고 지난 29일 숨지자, 일본에선 그의 반세기에 걸친 도피 생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31일 NHK방송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그는 49년의 도피 생활 동안 다른 사람의 조력을 받았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경찰의 질문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살아왔다’고 밝혔다. 휴대폰, 건강보험증, 운전면허증은 물론 은행 계좌도 없이 현금만 사용하는 ‘아날로그’ 생활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집에 콕 틀어박혀 은둔 생활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인근 주점에 자주 가서 음악을 즐기고 손님과 어울리며 지냈다고 한다.
현금으로 월급 받고 비보험 진료 받아
기리시마는 1974~1975년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 기업을 대상으로 연속 폭파 사건을 저지른 무장단체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의 조직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경찰의 집중 수배에도 단 한 번도 붙잡힌 적 없는 유일한 멤버다. 일본 전역의 경찰서, 파출소, 전철역에는 아직도 그의 흑백 사진이 담긴 수배 전단이 붙어 있다. 많은 이가 일찌감치 해외로 도주했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사실은 도쿄에서 멀지 않은 수도권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토목회사에서 ‘우치다 히로시’라는 가명으로 수십 년간 일하며 살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길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왔을 당시 그는 휴대폰이나 신분증도 소지하지 않은 상태였다. 회사에선 계좌 이체가 아닌 현금으로 월급을 받아 왔다. 말기 암으로 병세가 심각했지만 건강보험증이 없어 이전까지 병원에는 현금을 내고 비보험 진료를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쓰러진 그를 부축해 그의 집으로 갔던 사람은 당시 기리시마의 집이 빈 일회용 도시락통과 골판지 상자 등으로 가득해 몸을 누일 곳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사망 소식을 듣고도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라이브 연주 주점 단골... 흥겨워 춤추기도
그의 집 인근에 사는 주민은 그가 말수가 적고 집에서 혼자 살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그가 사람을 극도로 피하는 전형적인 은둔 생활을 해 온 것은 아니었다. 후지사와역 근처 식당은 그의 20년 단골집이었다. 이 식당의 60대 남성 주인은 그가 “1960~70년대 블루스나 록 음악을 좋아했다”며 “가게에서 밴드의 라이브 연주가 있을 때는 음악에 맞춰 곧잘 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리시마는 항상 혼자 왔지만 종업원이나 손님으로부터는 ‘우치~’라고 불리며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는 음악에 꽤 조예가 깊었고 미국 록밴드 ‘산타나’의 라이브 영상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사장에게 준 적도 있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정도만 밝혔다. 다만 약 15년 전 친밀해진 여성이 있었는데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며 교제를 거절한 적이 있다는 말도 한 적이 있다고 사장은 증언했다.
그는 같은 역 인근의 다른 바도 20년 전부터 곧잘 다녔다. 이 바를 경영하는 60대 남성은 “기리시마는 일주일에 1, 2회 정도 왔다”며 “다른 손님들로부터 ‘우~양’이라고 불리며 친숙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이 바에서도 음악 이야기를 주로 했고 가져온 CD를 틀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요코하마 시내의 라이브하우스까지 음악을 들으러 다닌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이 주점 주인은 “인근 해변에서 70~80명이 모여 바비큐 행사를 했을 때도 참가했다”며 “전혀 ‘숨어 사는’ 느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리시마는 코로나19가 확산되던 때부터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바의 주인이 그때 이후 그의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며칠 전 기리시마의 기사를 봤을 때였다. 테러범 기리시마 사토시가 우치다 히로시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다는 기사를 보고, 그를 아는 손님들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온화하고 착한 사람이었는데 정말 그가 맞느냐”, “뭔가 잘못된 게 아니냐” 같은 얘기를 했다고 그는 전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2919010000110)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2811490002444)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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