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저항의 싹’ 자르려 자체 보안법 제정 칼 빼들었다

이종섭 기자 2024. 1. 3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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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홍콩 도심에서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홍콩 정부가 오랫동안 별러온 자체 보안법 제정의 칼날을 빼들었다. 이미 중국이 제정한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 중이지만 자체 보안법 제정으로 법망을 더 촘촘히 하고 저항의 불씨를 없애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실상 홍콩의 중국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홍콩 정부는 지난 30일 ‘국가안보수호조례’에 대한 공공협의를 시작한다며 9개 장으로 구성된 협의문서를 공개하고 여론 수렴에 들어갔다고 명보 등 현지언론이 31일 보도했다. 국가안보수호조례는 홍콩 기본법 제23조에 따른 국가보안법의 성격을 갖는다. 기본법 제23조는 정부가 관련 법률을 제정해 반역과 분리독립, 폭동선동, 국가전복 행위 등을 처벌하고 정치조직이나 단체가 외국 정치기구와 관계 맺는 것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홍콩 정부는 2003년 보안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대규모 반대 시위에 직면해 물러선 바 있다.

이후 2019년 홍콩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중국 당국이 2020년 직접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했고, 국가보안법에 담기지 않은 반역죄와 국가기밀 절도죄 등을 반영해 홍콩 정부가 별도 보안법 입법을 추진할 것을 압박해왔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국가안보수호조례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올해 안에 입법을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은 현실”이라며 “우리는 모든 위협을 경험했고 그것들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치적 이유에 따른 서방 국가의 공격과 내부적인 거리 폭력의 위험을 홍콩이 직면한 안보 위험으로 지목했다.

홍콩 정부가 공개한 협의문서에 따르면 국가안보수호조례는 반역과 내란, 선동, 간첩활동, 외세 개입, 국가기밀 절도, 컴퓨터·전자시스템을 활용한 국가안보 위협 행위 등을 다룬다. 국가 분열과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의 범죄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홍콩 국가보안법을 보완하려는 취지라고 홍콩 언론들은 전했다.

조례 제정은 결국 법망을 강화해 저항의 싹을 자름으로써 2019년과 같은 대규모 시위 사태가 재발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정부는 협의문서를 통해 “2019년 발생한 대규모 폭력은 도시 전체의 공공 안전을 위협하고 국가 안보에 위협을 가했다”며 “현재 조례상 폭동죄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폭력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시위를 조례 제정의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조례 제정은 홍콩의 중국화를 사실상 마무리짓는 수순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은 2019년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이듬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2021년에는 홍콩 선거제도를 개편해 홍콩의 중국화를 빠르게 추진해왔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홍콩 민주화 운동 진영이 사실상 와해됐고, 애국자만 출마할 수 있도록 규정한 선거제 개편에 따라 입법회와 구의회는 친중 진영이 모두 장악했다.

카리슈마 바스와니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는 “새로운 법안으로 홍콩은 중국을 더욱 닮아갈 것”이라며 “홍콩은 중국의 또 다른 도시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그 변화가 거의 완성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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