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제설제’는 ‘화학무기’가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4. 1. 3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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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린 서울 시내 도로에 뿌려진 염화칼슘. 연합뉴스 제공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서 소금(염화소듐)‧염화칼슘 등의 제설제를 이용하는 ‘화학전’(化學戰)에 대한 거부감이 빠르게 증폭되고 있다.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제설제가 우리의 삶을 망쳐버리는 ‘화학무기’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제설제 때문에 도로의 철제 구조물과 자동차가 부식되고, 가로수가 말라 죽고, 포트홀이 더 많이 생기고, 반려동물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염화칼슘이 ‘지구 전체를 점점 더 짜게 만드는 생태계 교란의 주범’이라는 사회학자의 감성적인 지적도 있다. 그렇다고 과연 도로 밑에 설치하는 ‘열선’을 깔고, 불가사리로 만든 ‘친환경 제설제’를 사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사실 환경에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고 우리에게 성가신 눈만 말끔하게 치워주는 ‘친환경’ 제설제는 꿈속에서나 가능한 환상일 수밖에 없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기후 변화로 적설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폭설이 내리는 서울 시내 모습. 연합뉴스 제공

● 복잡한 도심의 성가신 눈

소나무 가지나 장독대에 고즈넉하게 쌓여있는 잔설(殘雪)의 여유를 기대하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심의 현실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바쁘고 각박하다. 인도와 차도에 쌓인 눈을 곧바로 치우거나 녹여버리지 않으면 당장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다.

자동차가 미끄러지고, 주민들이 넘어지고, 시설물이 파괴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복잡한 도심에서는 그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관(官) 주도의 제설 작업을 탓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차도와 인도에 쌓인 눈을 치우는 기적 같은 기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제설차로 직접 눈을 치우는 물리적인 방법이 가장 직관적이다. 그러나 복잡한 도심에서는 물리적 제설이 그림의 떡이다.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자동차와 보행자들 그리고 온갖 도로 시설물 때문에 제설차의 운행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제설차로 밀어낸 눈을 쌓아둘 공간도 없다. 값비싼 제설 장비를 마련해서 유지·관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겨울이 길지 않은 우리에게 제설차는 어울리지 않는 기술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결국 ‘제설제’를 이용하는 ‘화학적’ 제설 기술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도시화가 시작된 1969년부터 굳어져 버린 관행이다. 제설제 살포가 조금만 늦어지면 아파트 관리실과 시청·구청에 민원이 쏟아진다. 평소 극심한 화학물질 혐오증을 호소하던 주민들도 제설제는 마다할 수 없는 형편이다. 뾰족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설제가 눈(雪​)과 직접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제설제가 직접 눈을 녹이는 것도 아니다. 제설제는 일단 눈이 녹아서 액체 상태의 ‘물’이 생겨야만 그 효력을 발휘한다. 녹아 있는 액체 상태의 물이 다시 얼어붙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제설제의 역할이다.

제설제가 녹아 있는 물에서 나타나는 '어는점 내림' 현상 때문이다. 제설제가 녹아 있는 물의 엔트로피가 증가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추운 겨울에 간장이 얼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결국 도로에 쌓인 눈을 녹이는 것은 제설제가 아니라 제설제가 녹아 있는 액체 상태의 ‘물’이라는 뜻이다.

산업용으로 사용하는 암염(rock salt)이나 천일염이 제설제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지금도 전국에서 사용하는 제설제의 65%가 소금이다. 값이 싸면서도 충분한 제설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소금물과 석회석을 이용해서 생산하는 염화칼슘도 많이 사용한다. 염화칼슘의 제설 효과는 소금의 80%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염화칼슘이 물에 녹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용해열)이 제설에 도움이 된다. 염화칼슘 1g이 물에 녹으면 대략 3.2g의 눈을 녹일 수 있는 열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톤당 가격이 소금의 3배나 되는 염화칼슘을 무작정 사용할 수는 없다. 전국적으로 염화칼슘의 비중은 18%에 지나지 않는다.

제설제로 인해 만들어진 블랙아이스. 연합뉴스 제공

●  제설제가 만능일 수는 없다

실제로 제설제의 사용량은 상당하다. 작년 겨울에는 전국적으로 73만6000톤의 제설제를 도로에 살포했다. 올해도 지금까지 50만8000톤을 뿌렸다. 제설제의 사용량은 적설량에 의해서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작업자들이 제설제를 가장 합리적으로 살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겨울 날씨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덕스럽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무작정 작업자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도심에서 화학적 제설이 편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제설제가 만능인 것은 절대 아니다. 도로 표면의 온도가 지나치게 낮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제설제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처음부터 눈이 녹지 않으면 제설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도로에 살포한 염화칼슘이 녹지 않고 남아있다고 작업자를 탓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제설제 덕분에 녹았던 눈이 다시 얼어붙어서 만들어지는 ‘블랙아이스’도 골칫거리다. 고속도로의 음지나 교량 구간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결국 제설차의 운행이 가능한 고속도로나 국도에는 화학적 제설보다 물리적 제설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제설제를 사용하면 도로에 포트홀이 늘어나고 자동차나 철제 구조물이 부식되는 것은 사실이다. 도로 인근의 토양·나무·풀·농작물에 일으키는 염해(鹽害)도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 화학적 제설 기술을 사용하는 도로는 눈이 녹은 물이 도로에 고여있지 않도록 설계해야 하고 배수 시설도 마련해 놓아야만 한다.

가로수를 위한 보호막을 설치하는 것도 현명한 대책이 될 수 있다. 결국 배수로가 갖춰져 있지 않은 도로에서는 화학적 제설이 적절하지 않다는 뜻이다. 제설제를 뿌린 도로를 주행한 자동차의 세차도 중요하다. 무작정 제설제를 탓하는 것은 합리적인 자세가 아니다.

반려동물 때문에 제설제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염화칼슘에 의한 화상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 염화칼슘이 녹으면서 발생하는 열은 핫팩(손난로)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다. 염화칼슘을 뿌렸다고 도로의 물이 반려동물에게 화상을 입힐 정도로 뜨거워지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반려동물이 발바닥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염화칼슘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천연 제설제. 연합뉴스 제공

●  친환경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환경부가 인증한 '친환경' 제설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소금이나 염화칼슘에 들어 있는 ‘염소’가 문제라는 인식에서 비(非)염소계의 제설제를 ‘친환경’이라고 부른다. 주로 식물성 원료를 이용하는 발효 공정으로 생산한 '아세트산염'을 뜻한다. 조달청도 2013년부터 친환경 제설제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구입하는 제설제의 20% 이상을 친환경 제품으로 해야 한다는 지침도 시행하고 있다.

‘친환경’ 구호에 영혼을 빼앗긴 환경부와 조달청 덕분에 톤당 40만 원이나 하는 친환경 제설제의 비중이 17%나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재정이 비교적 넉넉한 서울시의 경우에는 염화칼슘의 비중이 37%나 되고, 친환경 제설제도 20%나 된다.

그런데 환경부가 권장하는 친환경 제설제가 반드시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실제로 아세트산염의 어는점내림 효과는 소금이나 염화칼슘보다 훨씬 작고 제설에 도움이 되는 용해열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더욱이 식물성 원료를 이용하는 생산 공정에서의 에너지 소비까지 고려하면 환경부가 강조하는 친환경성도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실제로 친환경 제설제가 정말 친환경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친환경 제설제처럼 '친환경'을 강조하는 제품은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다. 제조사가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친환경이 무늬만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해양 폐기물을 이용하는 친환경 제설제는 미세먼지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도심에서 온갖 화려한 문명 생활을 즐기면서 깊은 산골의 여유까지 함께 누리고 싶어 하는 심정은 아무래도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과욕(過慾)이다. 바쁘고 복잡한 도심에서의 생활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해주는 화학적 제설을 자연의 균형을 파괴하는 ‘화학전’으로 왜곡시켜야 하는 이유가 없다. 염소가 들어있다고 무작정 ‘짠맛’이 날 것이라는 주장도 화학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황당한 상상력이다.

제설제가 편리한 것은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넘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세상에는 공짜가 절대 없는 법이다. 우리에게 성가신 눈을 말끔하게 녹여주는 대가도 반드시 우리의 감당해야 하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확실한 인식이 필요하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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