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병자' 된 독일 경제, G7 중 나홀로 역성장 전망
고유가·고물가 직격탄…신산업 부진·고령화 악재도
Ifo연구소, 올 1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 전망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고물가·고금리 직격탄을 맞은 데다가 신산업 전환에 속도를 내지 못한 탓이다. 대대적인 변화 없이 내년에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EU 모범생’ 獨 성장률, 유로존 회원국서 뒤에서 2등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0.3% 감소했다. 독일 경제가 역성장한 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3.7%) 이후 3년 만이다. 팬데믹처럼 전 세계적 위기 상황이 아닌 데도 경제가 뒷걸음질쳤다는 점에서 독일 경제 상황의 심각성을 읽을 수 있다.
외르그 크레머 코메르츠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경제가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혀 성장하지 못한 게 우려스럽다”며 “이건 매우 드문 일이며 2000년대 주식시장 거품이 터진 직후 몇 년간을 상기하게 한다”고 말했다. 디르크 슈마허 나틱시스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의 중기 전망에 대해 이렇게 걱정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독일 경제 부진은 두드러진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지난해 성장률은 0.5%로 독일보다 선방했다. 지금까지 성장률을 공개한 나라 중 독일보다 낮은 나라는 아일랜드(-0.7%)뿐이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해 G7 국가 중 독일만 지난해보다 GDP가 감소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고금리·고물가에 신산업 부진까지
독일 경제는 지난해 내내 고금리·고물가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독일 경제는 에너지 가격과 금융 비용이 나란히 고공 행진하면서 이중고를 치렀다. Ifo연구소의 티모 볼머스호이저는 “코로나 기간 기업들이 두껍게 쌓아온 수주고도 이제 사라져 버렸다”고 ZDF 방송에 말했다. 민간 소비도 부진했다. 크레머 이코노미스트는 “낙관론자들이 믿었던 민간 소비는 끝까지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대외 경제도 독일 경제 발목을 잡았다. 핵심 수출국인 중국 경제가 휘청하면서 독일까지 유탄을 맞았다. 잇단 파업과 홍해 봉쇄 등 돌발악재 또한 독일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구조적 부진 요인도 있다. 신산업 부재가 대표적이다. 최근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독일은 미국·중국 등에 한 발 뒤처져 있다. 독일 경제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산업 역시 전기차 시장에선 미국 테슬라나 중국 비야디(BYD)에 밀린 후발주자 신세다. 이코노미스트는 까다로운 규제 절차와 엄격한 재정준칙 때문에 독일에서 신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한 고령화에 따른 숙련 노동자 부족도 독일 기업 발목을 잡았다. 독일 정부는 2035년까지 숙련 노동자가 700만명 부족해 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경제난은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AfD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 불법 이민 급증 등 기성정당 실정을 비판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기가 나쁜 옛 동독 지역에서 인기가 특히 좋다.
獨 재계, 정부에 경제체질 개선 요구
이대로면 올해도 독일 경제는 호전이 어려운 상황이다. 독일 이포(Ifo) 경제연구소는 독일 경제가 이번 분기에도 0.2%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토머스 깃첼 VP뱅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수출 비중이 높은 독일 경제는 세계 경제가 취약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계속 부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올해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크다는 게 독일 경제가 기댈 구석이다.
독일 경제계는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 경제단체 4곳은 “독일 경제는 중대한 구조적 난관에 봉착했다”며 전기요금 인하·인프라 투자·세제 개편을 요구하는 서한을 올라프 숄츠 총리에게 보냈다.
박종화 (bel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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