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핵심' 가현문화재단 두고 공방 가열
송영숙 회장 측 "문체부도 승인, 위법사항 없다" 반박
"재무상황 어려워"…가현 이미 작년에 주식처분 의결
사업으로 계속 흑자…빚 500억으로 부채비율 37%
지분매도 주체 변경 적정성 두고 논란 이어질 듯
[이데일리 마켓in 권소현 기자] 한미약품그룹과 OCI간 기업통합에 가현문화재단이 등장하면서 오너 일가 간 대립이 더 첨예해지고 있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측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008930) 지분 일부 대신 가현문화재단 보유분을 OCI에 매각하기로 하면서 대척점에 서 있는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임 사장 측에선 배임 의혹을 제기했고, 송 회장 측은 위법사항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임 사장과 차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기업합병을 위한 신주발행을 중단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상태인 만큼 OCI와의 지분매도 계약 당사자를 가현문화재단으로 바꾼 것에 대한 적정성 여부를 두고 양측이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3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임종윤 사장 측이 지난 29일 제기한 배임 의혹에 대해 한미약품(128940)이 적극 반박에 나섰다. 앞서 임 사장 측은 송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의 두 자녀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OCI에 매도하기로 했다가 두 자녀 보유분 대신 가현문화재단 보유분을 팔기로 변경한 것이 공익재단 설립 목적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송 회장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한미약품은 “수년간 누적된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년 3월24일 자산매각에 대한 이사회 의결을 마쳤고 4월17일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자산매각을 승인받았다”며 “아무런 위법 사항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작년 3분기 말 기준 가현문화재단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336만3613주(4.9%)를 보유하고 있다. 가현문화재단은 사진을 통한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지난 2002년 설립된 비영리법인이다. 출범 때부터 송 회장이 이사장을 맡아왔다. 2020년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별세하면서 임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증여받았다. 이를 OCI홀딩스에 넘기기로 하자 장남 측이 반발한 것이다.
임종윤 사장 측은 “가족 간 합의에 의해 상속재산 일부를 재단에 공동 출연했는데 자산 매각에 있어서 가족간 협의가 없었다”라며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의결권 등에 사용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 회장 측이 경영권 분쟁 상황에 지분을 활용했다고 보는 입장이다.
임종윤 사장 측은 “민법에 근거해 재단법인의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해태할 경우 법인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며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재단 빚 500억원, 부채비율 37%
한미약품 측은 이미 작년에 자산매각에 대한 이사회 의결과 문화체육관광부 승인을 마쳐 위법 사항이 없다고 반박했다. 문체부가 ‘재단 부채상환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산매각을 승인한 만큼 지분 매각대금을 가현문화재단 부채상환에 사용할 방침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재무사정이 어려운 만큼 작년부터 이미 보유지분 매각을 검토해왔다”며 “이번 OCI와의 합병 과정이 자산을 처분할 좋은 기회라 여겨 계약주체를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가현문화재단의 2022년말 기준 부채총계는 500억원이 넘는다. 이 중 단기차입금과 장기차입금이 각각 427억5000만원, 45억2400만원이다.
한미약품 본사에 있던 사진 미술관을 삼청동에 신규 건물을 세워 이전하는 과정에서 차입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과 2022년 재무상태표를 보면 미술관 건립에 대략 170억원 이상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 변호사는 “가현문화재단의 지분 매각이 재단의 설립목적을 훼손하거나 정관에 위배되는 행위가 아니면 가능하다”며 “지분 매각 대금으로 부채를 상환한다면 문제될 소지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단 상황이 어렵다는 점에는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있다. 가현문화재단은 2022년을 기준으로 최근 5년간 당기운영이익에서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2022년만 해도 35억4300만원의 흑자를 냈다. 그해 이자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16억6000만원 수준이다. 부채비율은 37%에 불과하다.
물론 미술관이 완공된 2023년부터는 건물에 대한 감가상각이 비용으로 반영되겠지만, 추정내용연수 40년에 걸쳐 정액법으로 상각하기 때문에 운영성과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당장 현금이 필요해서라기 보다 대주주 이익을 위해 가현문화재단을 활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당초 OCI에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도하려던 주체인 임주현 사장의 두 자녀는 2009년 3분기 보고서에서 처음 주주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29주를 장내매수하면서 최대주주 특수관계인으로 기재된 것이다. 유무상 증자를 통해 주식을 늘리다 2012년 외할아버지인 고(故) 임성기 회장으로부터 62만5205주를 증여받았고, 이후 무상증자를 통해 지분을 72만3788주로까지 늘렸다. 이번에 가현문화재단 등판으로 이들은 지분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아쉬운 현금화 시점
현금화 시점이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가현문화재단은 작년 3월24일 자산매각에 대한 이사회 의결을 마쳤고, 4월17일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자산매각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이번 기업통합을 발표하기 직전까지 최근 1년간 한미사이언스 주가를 보면 문체부 승인 시점이 4만5000원대로 가장 높았던 시기인데 이후 1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다 주당 3만7300원에 넘기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지분매각 승인 이후 블록딜 등을 통해 지분을 처분하려 했으나 할인율을 적용해야 하는 등 조건이 좋지 않아 미뤄왔다”며 “이번에 기업통합이 좋은 기회라 판단돼 가현문화재단으로 계약주체를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블록딜을 진행할 때 시장가 대비 2~5% 정도의 할인율을 적용한다. 할인율을 감안해도 승인 직후에 팔았다면 더 많은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었던 셈이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블록딜은 시장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분을 넘길 때 활용하는 것”이라며 “처분 계획을 수립하고 1년 가까이 시간을 끄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이번 딜에 위법성이 없다고 해도 지분 매도계약 당사자를 가현문화재단으로 교체한 데에 따른 장차남 측의 문제제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임종윤 사장은 지난해 가현재단법인이 보유 주식 매각을 이사회에서 결의한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소현 (juddi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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