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검사가 구속시킨 형제복지원장…공무원들은 “풀어주자” 했다

고경태 기자 2024. 1. 3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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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첫 관계기관 대책회의 문건 보니
대책회의 자체가 국가폭력 증거하는 생생한 현장
박인근은 형제복지원이 최고의 부랑인 수용 시설임을 보여주기 위해 회고록에 원생들과 각종 시설 사진을 실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 제공
“박인근을 불구속으로 원(형제복지원)을 정상 운영케 하여 문제점을 점차 개선 시행하는 방향으로 해야 합니다.”(북구청장)

“현재 원장은 민간인이므로 가혹한 행위도 가능하나 공무원이 운영하게 될 경우, 통제 등의 행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김OO 보안대 정보관)
한겨레가 입수한 형제복지원 관계기관 대책회의 문건. 박인근 원장 구속 뒤 첫 대책회의로 보인다.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물고문 사망 사건으로 시국이 어수선하던 1987년 1월16일, 부산 북구 주례동 산18에 있는 부산 최대 부랑아 수용시설 형제복지원이 젊은 검사 김용원(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에게 압수수색을 당한다. 다음날엔 박인근 원장 등 운영진 6명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폭행치사 등의 죄명으로 구속된다. 보고를 받은 대통령 전두환이 박인근 원장의 석방을 지시하지만 김용원 검사는 수사를 본격화한다.

압수수색 닷새 뒤인 1월21일 열린 부산지역 관계기관 대책회의에 모인 참석자들은 이미 구속된 박인근 원장을 어떻게든 불구속시켜 형제복지원의 기존 체제를 유지할 방법을 모색한다. 한겨레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국가기록원에서 입수한 ‘형제복지원 해산관계철’에 포함된 대책회의 문건에서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나자마자 폭력과 가혹행위로 통제해온 기존의 형제복지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에 나섰는지가 잘 드러난다.

참석자들은 구속된 박인근 원장을 불구속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며 여러 의견을 밝히는데 국가 차원에서 박 원장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이 담긴 문건이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형제복지원이 박인근 개인비리가 아닌 국가폭력인 이유를 생생히 보여주는 문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종호(왼쪽), 이채식씨 등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지난해 12월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뒤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건에 따르면, 이날 오후 부산 북구청장실에서 열린 대책회의에는 보사국장, 북구청장, 경찰서장, 보사국 사회과장, 안기부 조정관, 안기부 수사관, 보안대 정보관, 경찰서 정보과장이 참석했다. 안건은 ‘형제복지원 운영문제 대책 논의’였다. 이러한 대책회의는 6월1일까지 총 13회 열리는데, 이날이 첫 회의로 추정된다.

이날 참석자들은 형제복지원이 얼마나 억압적으로 원생들을 통제해왔는지를 알고 있었던 듯하다. 보안부대 김OO 정보관은 “현재 수용하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도 남아있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된다”며 “현재 원장은 민간인이므로 가혹한 행위도 가능하나, 공무원이 운영할 경우 통제 행위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가혹 행위를 통한 인권침해만이 이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들의 진짜 걱정은 ‘한 사람도 남아있기를 원하지 않는’ 원생들의 탈주 및 소요사태였다. 경찰서 정보과장은 “현재로서는 운영을 잘하면서 탈주자와 소요사태를 잘 방지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한다. 경찰서장도 “현재 1000명 이상을 집단 수용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에, 분산수용조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며 “어린이는 고아원으로, 노인은 양로원으로, 또 정신질환자는 타 정신요양원으로 보내자”고 말한다.

한겨레가 입수한 형제복지원 관계기관 대책회의 문건.

안기부 김OO 수사관은 “현재 방관만 하고 미온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경찰 병력을 각 소대별로 배치하여 탈출이나 소요 사태를 사전에 조치하여야 한다”고 하고, 안기부 송O 조정관은 “경찰을 투입, 경계근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찰서장은 “경찰이 투입되면 잠잠한 곳에 불을 지르는 결과를 초래하리라 생각된다”는 의견을 낸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한종선 대표는 29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 대책회의 문건은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국가차원의 은폐 시도를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국가는 형제복지원이 민간 위탁 시설이었다는 식으로 발뺌하면서 최근 피해자들이 승소한 손해배상소송 1심 결과에 항소도 했는데, 그럼 원장이 구속됐을 때 국가기구의 책임자들이 왜 대책회의를 했느냐”고 물었다.

대책회의에 참여한 이들에겐 무엇보다 박인근 원장의 불구속 조치가 절실했다. 이는 북구청장이 먼저 꺼낸 말이었는데, 다른 참석자들도 동감을 표시한다. 결국 제1의 대안으로 “원장 박인근을 불구속 기소 수사를 하여 위법사항은 엄벌하고, 당분간 박인근 현 원장이 운영케 하여 형제원의 소요사태를 방지하는 안”이 도출된다. “엄벌을 하되, 박인근 원장이 계속 운영케 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풀어주자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경찰서 정보과장은 “정신요양원 총무인 원장 아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서 사기를 높여 원장이 없더라도 잘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경찰서장도 “탈출이나 소요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원장 아들을 잘 타일러서 원장이 없어도 운영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박인근 원장 구속에도 아랑곳없이 형제복지원의 억압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이들에게 불법적으로 끌려온 원생들의 안위에 관한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수용자의 인권문제 개선을 언급한 참석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바란 불구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는다. 재판에 넘겨진 박인근 원장은 6월23일 부산지법 울산지원에서 징역 10년과 벌금6억8178원을 선고받는다. 결국 부산시는 6월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의 이사 5명, 감사 2명 등 임원 전원을 해임하고 같은 해 6월 박옥봉 변호사를 대표이사, 화명동교회 목사 황철제를 상무이사로 하는 새 이사회를 구성한다. 원장에는 예비역 준장 이남일을 선임한다. 대책회의에서 나온 제2안 ‘관선이사 보강’안을 따른 결과였다.

이후 부산시는 형제복지원생 퇴소 조치를 단행했다. 2월15일까지 약 한 달간 610명이 귀가 또는 전원 조처됐다. 3월17일에는 정식으로 입·퇴원 심사위원회가 결성되어 6월9일까지 정신요양원 피수용자 일부만을 남기고 3166명이 퇴소했다. 횡령 등 일부 혐의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 형을 받은 박인근 원장은 출소 이후 형제복지원이 형태를 바꾼 ‘욥의 마을’ 재단법인 대표이사로 복귀한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20일 형제육아원 설립부터 1992년 8월20일 정신요양원이 폐쇄되기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강제노역과 폭행·가혹 행위·사망·실종 등 중대 인권침해 행위를 벌인 일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22년 8월부터 올해 1월9일까지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총 세 차례 진실규명 결정을 통해 사건 신청인 490명의 인권침해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실제 피해자는 4만명에 이르고 657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되나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 신청을 한 사람은 728명뿐이다. 법무부는 지난 10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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