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없는 15살 명빈이의 소원은 ‘라면 한그릇 먹는 것’ [숭고한 나눔 장기기증]
3번의 수술 끝 소장 모두 잘라
음식 제한 많아 스트레스 극심
스스로 머리카락까지 뽑기도
이식 신청 후 14개월째 기다림
“길어진다고 아무도 원망 안해”

“제일 먹고 싶은 건 라면 수프예요. 엄마 몰래 조금 먹다가 된통 혼난 적도 있어요. 아, 다시 생각해보니 이젠 물이라도 마음껏 마시고 싶어요. 전 아무리 목말라도 마음대로 양껏 마실 수 없거든요.”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데, 김민서(43) 씨는 딸 김명빈(15) 양과 매일같이 ‘먹지 말라’며 전쟁을 치른다. 소장이 없는 명빈 양이 마음대로 음식을 먹었다간 큰일을 치를 수 있어서다. 명빈 양은 14개월째 소장 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명빈 양은 먹고 싶은 게 천지다. 이런 명빈 양에게 “소장 이식만 받으면 얼마든지 먹게 해줄게”라는 엄마의 말은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 딸에게 미안해 민서 씨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본 지 한참 됐다. 엄마의 소원은 하나다. “명빈이가 좋아하는 라면과 김치전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고, 짬뽕이나 치킨도 시켜주고 싶어요.”
지난 16일 충남 천안시 불당동 자택에서 만난 명빈 양은 영양수액을 공급하는 중심정맥관과 십이지장에 연결된 장루 주머니를 몸에 단 채 거실에서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명빈 양에겐 음식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는 소장이 없기 때문에 인위적인 영양·수분 공급이 필수다. 그렇다고 식사를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식도·위·십이지장 등의 기능과 운동성은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달걀·카스텔라 등 부드러운 음식 위주만 아주 소량 먹을 수 있다. 물도 하루에 700㎖까지로 제한된다. 그렇지 않으면 장루 주머니로 연결된 관이 막혀 자칫 사달이 날 수 있다. 소화된 음식물 찌꺼기는 십이지장과 연결된 관을 통해 소장 대신 장루 주머니로 빠져나온다.
명빈 양은 2020년 11월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뒤 복통을 호소하며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 가자 의료진은 명빈 양의 소장과 대장 일부가 썩은 것 같다며 응급 수술을 시작했다. 명빈 양은 소장 대략 7m 중 70㎝만 남겨두고 모두 잘라내야 했다. 2차 수술 땐 20여㎝를 남겨두고, 2022년 1월 3차 수술 땐 남김없이 잘라냈다. 민서 씨는 “2차 수술에서 의료진이 명빈이의 소장을 보여준 적이 있다”며 “원래 소장 색깔은 선홍색이어야 하는데 까만색, 상아색으로 변해 있었다”고 했다.
민서 씨는 2022년 11월 명빈 양이 소장 이식을 받을 수 있도록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고, 기증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처음엔 대기 기간이 3∼6개월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지만, 꼭 들어맞는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아 길어지고 있다. 명빈 양의 스트레스가 그만큼 차곡차곡 쌓이면서 민서 씨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명빈 양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장이 건강한데 왜 하필 나만 아파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 괴로움을 당해야 하나 싶어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급기야 명빈 양은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뽑아 버리는가 하면, 중심정맥관과 연결된 카테터를 몇 번이나 잘라 응급실을 찾기도 했다. 민서 씨는 “명빈이가 온종일 ‘날 좀 위로해주세요’ ‘달래주세요’라는 말을 달고 산다”며 “얼마나 억울하면 그러겠나 싶다”고 했다. 민서 씨는 머리카락을 뽑는 습관을 고치고 탈모를 막기 위해 명빈 양의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잘랐다. 명빈 양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 정신 장애를 앓고 있기도 하다.
장기 이식 대기 기간이 길어진다고 감히 아쉬운 마음을 가질 순 없다고 민서 씨는 단호히 말했다. 장기 기증은 누군가의 죽음을 전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명빈 양에게 기증될 소장은 명빈 양보다 어린 나이의 기증자에게서 올 가능성이 크다. 민서 씨는 “나도 똑같이 자식이 있고,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노력하는 상황이라 기증자 유족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며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상태까지 갔다는 게 얼마나 절망스럽겠느냐”고 했다. 그는 “장기 수혜자의 삶을 통해 기증자의 삶을 연장한다는 점에서 장기 기증은 숭고한 행위”라며 “딸에게 기증자가 나타난다면, 타인의 생명을 고귀하게 생각하는 유가족의 마음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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