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토론회 공감 깎는 세 가지 요인[문희수의 시론]

2024. 1. 3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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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논설위원
토론 겸한 업무보고 신선하지만
민생 대책 200여 개 국민 혼란
그동안 ‘개혁 못했다’ 자인 셈
조율 미흡에 여당 공약과 불협화
정책과 공약의 중복과 상충 우려
과유불급… 성과 보이는 게 차선

제21대 국회는 다음 달 1일 본회의를 끝으로 오는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체제에 들어간다. 법률적 임기는 5월 29일 끝나지만,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유례가 없는 최악의 국회였다. 이번 1월 임시국회까지도 달라진 게 없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2년을 맞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정부의 입법들은 줄줄이 국회에서 좌절됐던 반면, 다른 편에선 거야(巨野)의 무리한 입법 강행과 이에 맞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등으로 끊임없이 충돌했던 탓이 크다. 윤 대통령이 올해 민생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부처 업무보고를 겸한 민생토론회를 열어 각종 대책을 국민에게 직접 전하러 나선 것은 그동안의 무력감과 절박감의 반영으로도 보인다. 지난 30일까지 7차에 걸쳐 진행된 민생토론회엔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상투적 업무보고에서 탈피해, 관련 부처가 같이 참여해 민생 대책을 제시한 것은 바람직하다. 신년 기자회견이 열리지 않아 유감이지만, 국민 토론을 병행한 것도 좋은 시도다. 그렇지만 공감이 떨어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정부 스스로 반감시킨 측면이 크다.

크게 세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선택과 집중’ 없이 민생 대책이 나열된다. 지금까지 제시된 대책이 큰 제목만 잡아도 120여 개다. 세부 과제는 200개가 훨씬 넘을 것이다. 정부는 민생을 살린다는 의지를 강조하려면 대책이 많을수록 좋다고 여기는 모양이지만, 오히려 국민은 더 혼란스럽다. 대책 남발은 정리가 안 됐다는 인상을 줄 뿐이고, 앞으로 정부가 중점 추진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심지어 일부 대책은 재탕이고, 어떤 것은 포퓰리즘 색채가 뚜렷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선을 제압당한 듯 당혹해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단말기 유통법 폐지 같은 시의적절한 정책까지 빛을 못 본다. 민생 의지를 스스로 가리는 형국이다.

둘째, 대책을 낸 시점의 문제다. 하필 지금 이렇게 많은 정책들을 제시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결국 진작에 했어야 했던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고 자인하는 셈이 돼 버린다. 총선용 선심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을 자초하는 것이다. 실제 그런 소지가 다분하니 더욱 의문이다. 또 부처의 관료주의·이기주의를 깨지 못했다는 방증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윤 대통령이 책임장관제를 강조했지만, 상당수 부처에서 장관들의 무능과 부처 장악력 및 개혁 의지 부족 등으로 성과를 못 내 아직도 과제가 이처럼 산적해 있다는 식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만기친람은 책임장관제 실패와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차라리 지난해 하반기에 정기국회를 앞두고 민생토론회를 추진했었다면 공연한 비판을 살 일 없이 공감이 더 컸을 것이고, 지금쯤은 일부 성과도 나와 총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을 게다.

셋째, 대책들이 당정 및 관련 부서 간 사전 조율을 거쳐 나온 것인지도 의문이다. 준조세 폐지가 그렇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91개 법적 부담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지난해 기획재정부 산하 기금평가단은 36개 부담금 중 고작 3개만 폐지를 권고했다. 입법이 막혀 있는데 내년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앞당긴다는 것도 믿음이 안 간다. 더구나 여당은 총선 공약들을 따로 내놓고 있다. 지난 25일엔 2호 공약으로 초등학생을 학교에서 돌봐주는 늘봄학교 대책을 발표했는데, 전날 교육부가 올 2학기부터 전국 확대 방침을 밝힌 것에서 더 나아가 무상 제공을 약속했다. 하루 만에 말이 달라진 것이다. 민생토론회는 앞으로 일자리·안전·에너지 등을 주제로 계속 열린다고 한다. 여당도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추가 공약을 쏟아낼 게 뻔하다. 정부 정책과 여당 공약이 중복을 넘어 충돌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야 뭐라도 하는 게 백번 낫다. 그렇지만 정부는 거야 주도의 폭주 국회를 변명 삼지 말고, 민생 살리기 진정성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고,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 정부는 이번 민생 대책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성과를 내야 한다. 입법이 막히면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단지 몇 개의 대책이라도 실현해 성과를 국민에 보여주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다.

문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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